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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 '초월적 인생관'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3-02-19 10:49

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초월적 인생관 ♧

        "왜 근심과 후회로 일을 더욱 
    악화시키는가?
        마음의 눈을 들어 기뻐하는 무리들과 
    하나가 돼라.
        소망의 물결 속에서 고통 잊으라.
        지금은 견디기 힘든 일들도 모두 
    사라지고 말 것이다.
        마치 산 중턱에 걸친 안개처럼.

        시간은 우리의 상처를 아물게 하며 
    떨어지는 눈물을 마르게 하여 우리의 
    어깨에서 고달픈 멍에를 벗겨낸다.
        눈에 보이는 지속적인 고통은 없다.
        찬란한 빛을 감추는 어두운 구름은
    태양의 하얀 햇살로 곧 흩어질 것이며,
        정오의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그 자취를 감추리라.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자.
        고난의 금요일 뒤에는 부활의 아침이 
    있음을..."(William McMillan)

    엘리야는 갈멜 산상의 승리를 이끈 기도의 사람이었다. 삼 년 육 개월의 가뭄을 종식시키고 여호와 신앙의 절대성을 피조 세계의 무대에 어필하고 강력한 신앙의 전철을 놓았다. 그럼에도 이세벨의 칼은 더더욱 예리하여 이스라엘의 산천을 진동시켰고 바알 선지자 사백 명을 도륙 한 엘리야를 호렙 산으로 몰아내었다.

    삼 년 육 개월 전, 가뭄을 예고한 후 아합의 진노를 피해 그릿 시냇가에 피신한 후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먹여 주신 하나님의 기적을 먹고 산 엘리야였지만, 자신이 예고한 가뭄 또한 피할 수 없었다. 그릿 시냇물도 메말라버린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고달픈 사명자의 지친 몸을 뉘며 기다림의 대 장정에 올라 허기진 육신의 긴장을 애써 달랬을 것이리라. 

    엘리야를 위해 사르밧에 한 과부를 준비하시고 엘리야의 발길을 이끌어 한 줌의 가루로 섬김을 받게 하시면서 가뭄과 기근이 끝나고 땅의 소산을 먹을 때까지 사르밧 과부의 가루 독을 비우지 않으셨던 하나님, 드디어 엘리야를 아합 앞에 세우셨다. 당당하게 맞선 갈멜 산상의 대결은 길고 긴 가뭄과 기근에 지친 이스라엘에 내리는 긍휼의 비를 열고자 하심이었다. 

    그랬다. 엘리야는 언약 백성들이 난세를 횡단할 때, 하나님의 손과 발이었고, 말씀하시는 입술이었고, 사랑의 채찍이었고, 긍휼의 은총이었고, 구원의 메신저였다. 삼 년 육 개월의 가뭄과 기근 끝에 갈멜 산상의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참 이스라엘 되게 하고, 아합을 성군되게 하고, 이세벨 왕후를 회개시켜 내조의 본이 되게 할 수 있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적의 선지자 엘리야 역시 하나님의 형벌인 그 땅의 기근과 가뭄에서 자유할 수 없었다. 두려움과 공포와 걱정과 근심과 온갖 염려도 언제나 기적의 선지자 엘리야 곁을 맴돌았다. 그 어느 곳도 하나님의 지지가 없이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야고보는 엘리야 역시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강조했을 것이다(약 5: 17).

    비록 역사의 어둠이 손바닥만 한 구름조차 보이지 않게 할지라도, 그리고 그 세월이 얼마일지라도 고작 산 중턱과 능선에 걸친 구름 안개에 불과하다는 것을 외들 모를까? 멈출 수 없는 시간과 세월이 역사의 길이를 중단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진리다. 지구가 자전을 멈추지 않는 한 그렇다.

    엘리야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가 그릿 시냇가에 머물 때도, 사르밧 과부의 섬김을 받을 때도, 갈멜 산상의 승리를 이끈 때도, 호렙의 로뎀나무 아래서 절망의 슬럼프에 빠졌을 때도, 하나님 앞에서의 퍼스낼리티(personality)였다. 곧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사람 됨 됨'이었다. 지구가 자전하는 것은 시조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창설하여 그곳에 살게 하신 개념과 일치한다.

    '사람 됨 됨'이는 사람 구실을 하는 본질이요, '신앙 됨 됨'이는 성도 구실을 하는 본질이요, '직분자의 됨 됨'이는 사명의 구실을 하는 본질이다. '위정자의 됨 됨'이는 국가 차원의 공동체를 신정 국가의 국민으로 살게 하는 구실의 본질이다. 우리 인간이 이와 같은 됨됨이의 존귀에 처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확신할 때 모두 제구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신적 형상의 상실은 에덴의 낙원도, 언약의 땅 가나안도, 장차 도래할 메시아의 왕국도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성경은 이런 자에게 돌아갈 미래는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이를 갈며 슬피 우는"(마 22:13) 형편에 처할 따름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구촌이 그대를 영원히 품지 않을뿐더러 그럴 수도 없다.

    다만 그대에게 있어 지구촌의 의미는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현장이요 환경일 뿐이다. 왜 인생을 나그네에 비유하겠는가? 왜 사람은 일은 집을 떠나 하고, 안식과 잠은 집에서 하겠는가? 집은 신국을, 바깥은 지구촌의 비유이기에 그렇다. 위에서 결론짓는 고난의 금요일이 지구촌이라면, 부활의 아침은 요한계시록에서 선명하게 보여 주는 영원한 신국이다. 

    하여 이를 선명하게 바라본 요한계시록의 저자 사도 요한은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마라나타)"(계 22:20) 라고 성경 기록의 막을 내린다. 어쩔 텐가? 때가 되면 뜨거운 불에 지구촌의 모든 체질이 녹아 없어질 텐데(벧후 3:12) 그래도 지구촌의 물질에 그대의 인생을 걸 텐가? 진정 그대가 그대 자신을 존재 이상의 가치관으로 사랑한다면 물질 세계인 지구촌을 초월한 인생관에 도전해 보세요.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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