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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채플교회 이광형 목사, '동참해야 합니다.'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3-05-03 11:52

도곡동 드누보 문화선교센타 이광형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동참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20)

어떤 일에 동참한다고 했을 때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사람이라면 그 일에 대한 기대감과 자부심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소 동참에 소극적인 이유는 거기에서 느끼는 부담감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극적이든 조금 소극적이든 동참을 하기로 했다면 반드시 갖게되는 공통점은 바로 책임감이라는 것입니다.

동참은 책임감을 필요로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더 강한 책임감을 감수하고자 한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이고 책임감에 부담을 느낀다면 동참하는 일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그 일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면 부담감을 뒤로 한채 책임감을 가지고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십자가와 부활에 관해서는 어떻습니까?

십자가와 부활에대한 적극적인 동참을 이루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받음으로 족하다 여기며 살아가십니까?

여러분은 십자가를 바라보실 때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나를 위하여 고난 받으시고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달리신 주님의 십자가'

아마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묵상하며 갖는 생각일 것 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실을 믿으며 베풀어 주신 그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며 감사드리는 것이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갖게되는 공통적인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을 잘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 은혜와 사랑을 묵상하며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반드시 함께 공존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동참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십자가는 나를 살리고 구원하시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나의 죄 때문에 주님이 나 대신 달리신 것이기때문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4:25)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주님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위해, 곧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살아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우리 이 고백을 오늘 여러분의 입술로 선포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를 따라서 고백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나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죄 때문에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의롭다하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은혜와 사랑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십자가는 추상적이거나 일방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는 일 년에 한 번 씩 우리의 묵상을 위하여 고난주간에 필요로 하는 요소일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나의 신앙의 중심에 그래서 나의 삶을 에워싸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일 년에 한 번 쯤 참여하고 가끔 힘들거나 은혜받고자 할 때 찾아보는 종교적인 것으로 취급 되어질 수 밖에 없더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주님의 십자가는 단순히 주님의 은혜와 사랑만 바라보며 만족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많이 받고 그 사랑을 이성적이고 지식적으로 충분히 알고 돌아가라는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결코 십자가는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게 될 지언정 진정 나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깊이 깨닫지 못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나 때문에, 나의 범죄 때문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십자가를 바라 볼 때 먼저 이 사실을 생각해야 할 책임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참하기 위하여 책임감을 가지라는 것이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동참해야 합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성경은 오늘 말씀을 통해 자세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여러분은 이제 이 고백에 동의하십니까?

이것은 그저 바울의 신앙이고 바울의 고백으로 기록되어 있기에 우리는 말씀을 통해 오늘같이 본문을 읽을 때에 은혜 받으면 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바울은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은혜와 사랑에만 머물고 있는것이 아니라 거기에 동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기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단순히 주님이 달리신 주님만의 십자가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 자신도 달린 주님과 자신의 십자가였습니다.

비록 실지로 똑같이 못 박힌 것은 아니지만 바울은 주님이 달리신 그 십자가는 자신의 죄악 때문임을 알기에 먼저 이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을 고백함으로써 책임감을 가지고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을 이야기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주님과 함께 자신도 죽었음을 선포합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것은 동참하지 않고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과 함께 죽지 않고는 누구도 언급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죽음은 죄에 대한 죽음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은 실지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바울이나 우리는 똑같이 그러한 죽음을 당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 때문에 우리의 죄를 모두 짊어지고 죽으신 주님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셨는데, 다시 말해서 주님은 우리의 죄와 함께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참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여기서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나 때문에 죽으셨음을 고백하며 십자가에 동참해야하는 까닭이 바로 주님이 나 때문에 내 죄와 함께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것은 그저 주님께 맡겨 드린 내 죄의 일부가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어떠한 이유나 상황 때문에 미처 다 내어 드리지 못 한 내 죄의 또 다른 한 부분은 죽지 않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나의 모든 죄, 곧 죄인 그 자체인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혔고 주님과 함께 죽었기에 이제 다시 사신 주님으로 인하여 이전의 내가 아닌 주님께 의롭다 여김을 받는 나로 변화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동참입니다.

그리고 이전의 나는 죽고 오직 내안에 계시는 예수로 말미암아 사는 삶입니다.

틀림없는 사실은 주님의 십자가는 긍휼과 은혜이고 무한한 사랑과 구원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먼저 동참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과 은혜는 공허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구원의 감격은 있는데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지 못 하고, 부활은 믿는데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그 능력으로 살아가지 못 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본다면 또 다시 다른 은혜만을 운운할 것이 아니라 다시 십자가 앞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에 오늘도 나는 동참하고 살아가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은 오늘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까?

아니면 못박히신 주님만 바라보고자 하십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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