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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한인교회 김정효 목사,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3-05-03 11:52

스위스한인교회 담임 김정효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사도행전 10:1-8)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일이니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바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 (사도행전 10:1-5)“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곧 요한이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전파된 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의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을 때에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 이러라! (사도행전 10:34-46)“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首長)인 <베드로>를 로마군대의 백부장이며,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 보내, 그 집 식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베드로가 보는 앞에서 그 집 식구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하심으로써, 베드로와 <유대인 중심>의 <예루살렘 교회>로 하여금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민족들도 동일하게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유대인 위주>의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 전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바울 사도>는 이 <이방인 전도>를 위해 그의 삶을 <헌신>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이 역사적 사건을 위해 <고넬료의 가정>을 선택하셨을까요?
 
고넬료의 가정은 주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사도행전 10:1)“

한마디로 <소망이 넘치는 가정>이었습니다.

(1) 온 가정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었습니다.
(2) <구제를 많이> 하는 가정이었습니다.
(3) <항상 기도>하는 가정이었습니다.

가정은 <작은 천국>입니다. 
<천국 백성>에게는 <믿음>이 있고, <소망>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있습니다.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이 이처럼 <가정천국>을 이룬 가정이었습니다.

가정을 가정답게 하는 것은 가족들간의 끈끈한 <사랑>입니다. 
가정이 좋은 것은 이 사랑으로 하나되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안식처>이고, <천국>입니다. 
<주님의 낙원>이 좋은 것은, 그곳은 모두가 사랑으로 하나된 <사랑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13).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은 이 <사랑>으로 <가정 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참 제자가 되어 주님의 이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요한복음 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1. 이 사랑은 <책임져주는 사랑>입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누가복음 15:4-6)“

다른 사람들에게는 양 한 마리가 소중하지 않을지 모르나, 이 목자는 목숨 걸고 책임질 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양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희생하신 것은, 당신의 목숨을 걸만큼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가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 이여, 마치 도수 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 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이사야 53:5-9)“

참사랑은 상대방을 책임지기 위해서 목숨까지라도 버릴 수 있는 사랑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한복음 10:11-15)“

미국 <뉴욕>의 <성 요한 교회>는 매년 한번씩 <성 프란치스코(San Francesco d'Assisi, 1567-1622)>를 기념하는 예배를 갖습니다.                                                                                                                                                                 이 날은 <성 프란치스코>의 사랑을 기념하기 위해 신자들이 집에서 기르고 있는 모든 애완동물도 함께 데려오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시시의 성자>로 불리는 <프랜치스코>는 그의 설교시간에는 지저귀는 참새들을 조용하게 만들고, 사나운 짐승들도 온순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항상 그가 수중에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고, 그가 입은 값비싼 옷을 걸인들에게 선물했습니다.                                                                                                                                                                                 그리고서는 자신은 걸인의 누더기를 걸친 채 귀가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종종 <문둥병 환자>들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으며, 걸인들의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여, 진정 행복과 평화를 원하는가? 그러면 먼저 마음을 비워라! 그리고 그 빈 곳에 이웃에 대한 사랑을 채워라! 사랑이 있는 곳에서는 분노와 탐욕은 눈처럼 녹아 내린다! 사랑은 내 안의 나를 비우는 것에서 시작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28)“

2. 이 사랑은 <섬김의 사랑>입니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한복음 13:13-15!“

필리핀의 유명한 부자 사업가의 아들 <카풍카우>라는 청년이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학교에 가 보니 화장실과 욕실이 너무 불결해서 학장에게 가서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학장님, 이렇게 더러운 곳에서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겠습니까? 깨끗하게 청소 좀 해주세요!”
 
“알았네, 내가 다 알아서 조치할 테니 가 있게!”
 
잠시 후에 이 학생이 그 화장실에 다시 가 보았습니다.                                                                                                     안에서 요란하게 씻고 닦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청소부를 데려다가 청소하는 줄 알고 들어가 보니 학장님이 직접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학장님이 청소를 하다가 이 학생을 보았습니다.
 
“조금 있다가 들어오게! 이제 곧 개끗해질테니 염려하지 말게!”
 
“학장님, 청소부 데려다가 시키면 될 텐데 왜 직접 화장실 청소를 하십니까?”
 
“교회나 신학교에서 이런 일은 먼저 보는 사람이 해야 하는 걸세!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네! 힘으로 해결하는 것도 아니네! 불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솔선해서 청소를 하게 되면 우리의 환경은 얼마든지 깨끗해질 수 있는 걸세! 부잣집 아들인 자네가 여기 와서 보니까 좀 불결해 보일 뿐이지, 다른 사람들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네! 그러니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솔선해서 수고를 해준다면, 이 학교의 환경은 자네가 바라는 만큼 충분히 깨끗해질 수 있는 거라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代人)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5-28)“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12)“

3. 이 사랑은 <용서의 사랑>입니다.

(1) <무조건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 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6:14-15)“

미국에서의 <인종차별>이 매우 심했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한 백인 남자가 자기집 정원에서 한가롭게 맥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이때 다 해어진 옷을 걸친 한 인디언이 지나가다가 그 신사에게 빵을 구걸했습니다.                                                                
그 인디언은 매우 지쳐있었고, 극심한 허기와 갈증으로 인해 쓰러지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백인 남자는 빵을 구걸하는 인디언에게  '너에게 줄 빵이 없다!‘고 야멸차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지금 매우 목이 마르니, 당신이 마시는 맥주라도 한 잔 주십시오!‘라고 했으나 역시 거절 당했습니다.                                                                                                                                                                            몹시도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던 이 인디언은 마지막으로 '정 그러시다면 물이라도 한 모금 마시게 해주십시오!‘ 라고 했지만, 이 백인 남자는  '너처럼 개 같은 인디언에게는 한 방울의 물도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 백인 남자의 모독적인 언사에 그 인디언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힘없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얼마 후에 이 백인 남자가 사냥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깊은 산속에서 사냥개를 놓치는 바람에 그만 홀로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방향감각도 없이 산 속을 헤매는데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산속을 헤매다가 지칠 대로 지쳐버린 그는 이제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 죽을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마침 그때 그 곳을 지나던 한 인디언이 그러한 그를 구출하여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그의 원기회복을 위해 기름진 음식으로 후하게 대접하며 충분히 먹고 마시게 했습니다.                                                                                                                                                                            그 백인 남자가 정신을 차리고 난 후 가만히 보니, 자기를 구출한 인디언은 바로 얼마 전에 자기가 문전 박대했던 그 인디언이었습니다.                                                                                                                                                 그 백인 남자는 너무도 계면쩍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이 인디언은 조용히 말해줬습니다.
 
"당신이 얼마 전에 나에게 한 것처럼 내가 당신을 대했다면, 지금쯤 당신은 산중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 (잠언25:21-22)"

(2) <끝까지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마태복음 18:21-22)“

미네소타 <크리스챤 크로니클> 이라는 잡지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킴 푹> 여인은 베트남 여인으로 <월남전> 당시 <네이팜 폭탄>이 떨어진 마을에서 온 몸이 불에 데인 채로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와 생존한 사람입니다.                                                                                                                                                       그녀가 <유명인사>가 된 것은 우연히 <종군기자>의 카메라에 그녀의 도망치는 모습이 찍혀, 전 세계 여러 신문에 실렸기 때문입니다.
1996년 워싱턴에선 <월남전 기념비 제막식>이 있었는데 그녀가 초청되어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연설에서 민간인 마을에 폭탄을 투하한 그 <비행기 조종사>를 만나면 그를 <용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자리에 <죤 머플러>라는 그 비행기 조종사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도저히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바로 그 조종사입니다! 저의 오판으로 고통을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그 일로 인해 그 동안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용서해 주시오! 용서해 주시오!"

그때 <킴푹>여인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용서합니다! 다 용서합니다! 저는 끝까지 당신을 용서할 것입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이 광경에 행사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용서를 빌고 용서하는 감격스런 장면 앞에서 눈물을 훔치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 후 그녀는 자기와 가족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남긴 그 당사자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는지를 말했는데, 이는 그녀가 월남전이 끝난 후 이주해온 미국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4. 이 사랑은 <희생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和睦祭)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한1서 4:7-11)“

어떤 <목사>가 한 농가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크리스천>이 아니었지만 믿는 그의 아내는 오랫동안 남편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는 그 집 주인에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참뜻을 설명해 줄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농장 주인이 상기된 표정으로 목사에게 와서 빨리 함께 닭장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를 따라 닭장에 가보니 둥지에 암탉 한 마리가 앉아 있었는데, 그 날개 밑에서 새끼병아리들이 삐죽 삐죽 머리를 내밀고 밖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농장주인이 말했습니다.

 „저 암탉의 머리에 난 상처를 좀 보십시오! 간밤에 족제비가 피를 빨아 먹었던 부위입니다! 하지만 어린 새끼들이 족제비에게 당할까 봐 꼼짝도 않고 피를 다 빨리 운 후 죽고 만 것입니다!“
 
그때 그 목사는 농장주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건 바로 인류의 구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꼭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그 모든 고통을 다 견뎌내셨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능히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도 있었고, 스스로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분께서 그렇게 하셨더라면 선생님과 나는 영원히 죽게 되었을 것입니다!“

목사의 그 말을 들은 받은 농장주인은 그 말뜻을 깨닫고서 머리를 끄덕였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한복음 15:13-14)“

이 사랑으로 <가정천국>을 이루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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