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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기지않고 다스리는 ‘옛 선조들의 여름나기’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강일기자 송고시간 2023-08-03 09:36

대전대 바이오헬스혁신융합대학사업단 교수 박승규

사계절이 순환하는 우리나라에서 피서는 삶의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피서는 오늘날의 전유물일까? ‘쇠나 돌이 녹아 흐른다’는 삼복더위에 예나 지금이나 힘들긴 마찬가지일 터. 선조들이 터득한 최고의 피서법은 ‘피서’라는 말 자체에 담겨 있다. 삼복 무더위는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이미 ‘세 번 항복’했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듯, 멀찍이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삼복’은 한여름인 7~8월 중에 있는 세 절기를 이르는 말이다. 초복, 중복, 말복은 역 열흘 간격으로 더위가 절정을 향해 가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되는 때다. 이 삼복(三伏)에서 복(伏)은 엎드릴 복으로 사람 인(人)과 개견(犬)이 합쳐진 모양을 띠고 있다. 날씨가 너무 더워 사람이 개처럼 엎드려 지낸다는 의미이다.
 
‘더위를 피한다’는 뜻의 피서(避暑)는 자연의 변화와 힘에 맞서지 않고 순응하며,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유두절에 머리 감기, 탁족, 부채나 죽부인 등을 이용하는 풍습이 그렇다.
 
# 왕도 경연을 중지했던 삼복
 
신라인에게 인기 있던 피서지는 태화강 상류인 울주군 두동면 일대였다. 525년 음력 6월 18일, 법흥왕의 아우이자 진흥왕의 아버지인 갈문왕을 비롯해, 김유신 가문 사람들도 태화강 수계를 자주 찾았다. 경주 남쪽 비교적 가까운 곳이면서, 주변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여름철 피서지로 안성맞춤이었다. 700여 년간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던 백제의 마지막 수도 부여에는 궁남지가 있다. 우리나라 정원문화의 시원이다. 서동요 속 백제 무왕이 된 서동과 선화공주의 아름다운 사랑이 전해 온다. 바다같이 큰 연못을 왕궁 근처에 만든 것은 백제가 처음이었다. 무왕부터 마지막 의자왕까지 군신들은 배를 띄우고 연회를 즐겼다. 신라는 문무왕 대에 인공 호수 안압지를 만들고, 임해전을 세웠다. 백제 궁남지와 같은 개념이었다. 울산에서 경치 좋기로 소문난 태화루는 신라 때 최초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997년 고려 성종이 들렀을 정도로, 풍광이 뛰어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 충렬왕은 여러 차례 개경을 떠나 비교적 선선한 서경(평양)에서 정무를 봤다. 사실상 여름철 행궁인 셈이다. 고려 시대부터 삼복 때면 관리들에게 여름휴가를 줬다. 삼복 때는 왕도 공식적으로 경연과 정무를 중지했다. 조선 정조 연간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의 주 무대는 중국 북경 동북쪽 230km 떨어진 ‘피서산장’이다. 역대 청나라 황제 대부분이 북경의 더위를 피해 매년 4월에서 9월까지 6개월 동안 그곳에서 지냈다. 조선은 청나라처럼 화려한 여름 별장을 따로 짓지는 못했지만, 궐 안에 휴식과 피서를 겸할 수 있는 별도 공간을 마련했다.
 
# 궁 안에 연못들인 조선의 왕들
 
조선 시대 왕들은 겨울철 군사훈련과 사냥을 겸한 강무 시기를 제외하고는 도성을 떠나지 못했다. 세종대왕과 세조처럼 병 치료를 위해 온천에 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궐을 벗어나는 일 자체가 드물었다. 왕의 행차 자체가 큰 민폐였다. 바람이 잘 통했던 경복궁 경회루와 창덕궁 후원에서 자연 피서법을 할 수밖에 없었다. 1413년 6월 2일 태종은 피서를 위해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더위를 식힐 넓은 연못과 경회루가 있기 때문이었다.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린 창덕궁 후원에는 여러 정자들이 늘어서 있는데, 조선 왕들이 가장 애용하던 피서지였다. 단종은 광연루 터에 피서용 별실을 세웠고, 연산군은 서총대를 만들었으나 한 달도 되지 않아 쫓겨났다. 훗날 숙종은 소요정 서쪽 옥류천을 관상하면서 시를 짓기도 했다. 대청댐 인근 대통령 전용 별장이었던 청남대는 왕조 시대 피서 행궁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 신하에게 얼음을 나눠 주는 ‘반빙’
 
겨울에 얼음을 저장했다가 여름에 사용하는 방법은 삼국 시대부터 보편화됐다. 조선 시대 서울 옥수동에는 동빙고, 용산구 서빙고동에는 얼음창고가 있었다. 연산군은 여름에 대비의 생일잔치를 벌이면서 천근(600kg) 짜리 얼음 쟁반을 사용했다. 대부분 얼음은 궁궐이나 왕실에서 사용했지만, 고려 때부터 고위 문무백관에게 얼음을 나누어주기도 했다. 에어컨, 냉장고 등이 없던 시절, 이 ‘반빙’이라는 제도는 임금이 신하를 다독이는 유용한 정치적 수단이었다. 시원한 얼음 물에 담가 뒀던 수박이나 참외와 같은 여름 과일을 먹거나, 꿀과 한약을 섞은 제호탕을 마시는 것도 왕이 누릴 수 있는 큰 호사였다.
 
조선 최장수 왕 영조는 가을보리로 만든 미숫가루를 여름철 건강식으로 먹었다. 정조는 더위를 식힐 때 우뭇가사리로 만든 냉국을 들었다. 화채, 미숫가루 등과 삼복에 쑤어먹던 팥죽도 여름철 대표 궁중 음식이었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 지금의 짜장면처럼 냉면을 배달시켜 먹었다. 실학자 황윤석의 ‘이재일기’에는 1768년 7월 과거시험 중 점심으로 냉면 먹은 기록이 나온다. 순조 역시 즉위 초 신료들과 달 구경을 하다가 ‘냉면을 사오라’고 시켰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런가 하면 1777년 7월 정조가 등극한 직후, 임금 시해를 모의한 곳은 경희궁 앞 보신탕집이었다. 보신탕은 1795년 6월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 잔칫상에도 올랐다. 그 무렵 성균관 유생들에게도 초복 때면 특식으로 보신탕이 나왔다. 뭐니 뭐니 해도 전통 피서법 중 으뜸은 천렵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물론 점잖은 양반들도 여름이면 개울가에 천막 치고, 천렵을 즐겼다. 가마솥에 갖가지 민물고기와 미나리 등을 적당히 손질해 넣은 후 끓여먹는 매운탕은 여름철 최고의 보양식이었다. 심지어 고종 때 대왕대비의 수라상에 쏘가리탕이 올랐다는 기록도 보인다.
 
# 체면을 중시한 양반들은 탁족
 
조선 성종 때 함양 군수로 부임한 김종직은 1472년 8월 14일 지인들과 함께 지리산 탐방에 나서 ‘유두류록’을 남겼다. 지리산은 영호남 유학자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유람처였다. 전국 곳곳 울울창창 나무가 우거진 계곡에는 ‘00동천(洞天)’이라고 쓴 각자 바위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동해 무릉계곡처럼 대개 산과 내로 둘러싸여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답고 좋은 명승지를 일컫는다. 원래 도가에서 신선이 산다는 별천지였지만, 선비들의 안식처이자 피서지로 탈바꿈했다. 전남 담양 소쇄원, 윤선도의 부용동 정원과 같은 별서 정원은 세속의 번잡함과 권력 다툼에 지친 자와 때를 기다리는 자의 공간이었다.
 
‘탁족’ 역시 대표적 여름 피서법이었다. 오늘날 ‘족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주로 체면을 중시하는 양반들이 흐르는 물에 발만 담그는 것으로 더위를 식히곤 했다. 유배지에서 돌아온 정약용은 1824년 여름 ‘소서팔사(消暑八事)-더위를 피하는 여덟 가지 방법’을 제목으로 시를 지었다. 소나무 그늘 아래 삼삼오오 모여 활쏘기, 그네뛰기, 넓은 정자에서 투호놀이, 시원한 대자리 위에서 바둑 두기, 연꽃 구경하기, 숲속 매미 소리 듣기, 비 오는 날 시 짓기, 달밤에 냇가에서 탁족하기 등이다. 지금과는 매우 다른 피서법이지만, 한가롭고 여유 넘친다. 
이경윤의 탁족도/출처=고려대 박물관

우리 세시풍속 중 음력 7월 15일은 백중날이다. 힘든 농사일을 잠시 접고 머슴에게 휴가를 준 ‘머슴날’이기도 했다. 세벌 김매기가 끝난 후 ‘호미 씻는 날’이라고도 불린다. 논과 밭의 김을 다 맨 7월 중순경, 이제 큰 농사일은 끝났으므로 농기구를 씻어 가을 수확기를 대비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마을 단위로 술과 음식을 장만해 남정네들은 지게에 지고, 아낙네들은 광주리에 이고 가까운 시냇가나 계곡으로 모였다. 체면을 중시하던 양반들과 달리 서민들은 자유롭게 자연과 하나가 되어 더위를 이겨냈다.
 
# 진정한 피서는 휴식과 비움
 
현대에 들어 가장 크게 발달한 피서 문화는 해수욕이다. 우리나라는 1913년 일본인들에 의해 부산 송도해수욕장이 개설되기 시작해, 인천 월미도, 원산 송도원 등에 연이어 개장하면서 차츰 새로운 피서법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프랑스어로 피서를 뜻하는 바캉스(vacance)는 ‘텅 비우다’는 라틴어에서 온 말이다. 먼 휴가지 대신 집이나 근교에서 쉬는 ‘스테이케이션’-집에 머물며(Stay) 보내는 휴가(Vacation)를 합친 개념-이 새로운 휴가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도심에서 ‘호캉스(호텔+바캉스)’를 즐기는 것도 새로운 풍속도다.
 
어디 멀리에 꼭 가야만 더위를 피하는 게 아니다. 바람이 솔솔 부는 정자에서 낮잠에 빠지는 상상만으로도 절로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떠오른다. 진정한 피서는 ‘떠나기’보다 휴식과 비움에 방점이 있다. 아파트 공화국, 다양한 냉방기계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즈음 자기만의 이색 피서법을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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