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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기행(6)] 문화공간 카페 노닐다 - ”샛길과 테라스의 대화”

[제주=아시아뉴스통신] 이재정기자 송고시간 2015-12-31 00:32

 자맥질하는 해녀 할망들의 모습에서 살아있는 제주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사진제공=문화공간 노닐다)
  노닐다지기 - 박신옥

 우도의 해안길을 따라가다 보면 바다 곳곳에 둥근 테왁들이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해녀들의 분신이라고도 불리는 이 테왁들은 그녀들이 가슴이나 팔을 얹고 잠시 쉬거나, 뿔소라와 전복 같은 어획물을 넣어두는 데 쓰입니다.
 
 아직 해가 가슴께에도 오르지 않은 이른 아침에 해녀들이 고래의 꼬리처럼 힘차게 두 발을 수면 위로 차올리면서 자맥질하는 모습과 다시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고 숨비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면 저것보다 더 깊은 기도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잠수복을 입고 물질을 할 때는 그녀들의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지만, 수경을 벗으며 물을 나오는 그녀들은 대개가 할망(제주 방언으로 할머니란 뜻)입니다. 테왁에 의지한 평생의 고된 삶으로 이 해녀 할망들의 어깨와 허리는 구부정합니다. 길가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유모차들은 그녀들의 불안한 걸음걸이를 도와주는 또 하나의 귀여운 발인 셈이지요.
 
 이 해녀 할망들의 얼굴을 향해 관광객들이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일이 많은데요. 성급하고 무례한 카메라는 총구와 같습니다. 아직도 그녀들 중 몇은 물질을 ‘천한 일’로 여기고 있어서, 호기심에 번뜩이는 렌즈 앞에 대상화되는 것에 상처를 입습니다. 저 세 음절의 말은 실제로 우도에 사는 어떤 이로부터 들은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물질로 새끼들을 키워 내고 억척스레 생계를 꾸리는 그녀들의 빛나는 노동이 이제는 온전히 그 가치를 인정받을 때가 되지 않았나요?

 ‘카페 노닐다’ 옆으로 난 샛길로 가끔 해녀 할망이 지나갑니다. 테라스에서 뭔가를 분주하게 하다가도 그녀를 보면 득달같이 달려가서 말을 건네지요.

 할머니, 오늘은 뭘 잡으셨나요.  보잘 것도 없어, 겨우 소라 몇 개야.  이거는 뭐예요.  보말, 칼국수에 넣으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어. 물질하기에 힘이 부치지는 않으세요? 삼 년 전에 심장수술을 한 이후로는 깊은 물로 들어가지도 못 해. 가까운 데서 왔다갔다 하는 거지. 

 근데 할머니, 파마는 어디서 하셨어요, 예뻐요. 뽀글뽀글 파마가 뭐가 이뻐, 그리고 할망이 이뻐 봤자지. 여길 지날 때 앉아서 쉬었다 가세요. 시원한 음료 드릴게요. "에이, 폐 끼치기 싫어"

 말도 맺기 전에 가던 길로 발걸음을 놓기 시작하는 해녀 할망. 부실해 뵈는 관절을 천천히 접고 펴며 샛길을 올라갑니다. 그녀가 사는 낮은 지붕의 집에 갯내음 가득한 것들이 부려지고 나면, 할망도 두 다리를 쭉 펴보겠지요.

 이 해녀 할망들이 더 이상 물질을 할 수 없게 되면 우리나라 해녀의 맥이 끊길지도 모른다네요. 벌써 제주 본섬에는 해녀 박물관도 있더군요. 농업박물관이란 말이 무서운 것처럼 해녀박물관이란 말도 어쩐지 때 이른 멸절의 느낌을 주지요. 아직 살아 숨쉬고 있는 대상을 위해 세워진 박물관이라니.

 그러나 오늘도 우도의 해녀 할망들은 일용할 바닷것들을 테왁에 담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면서 집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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