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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성주사지에서 천년의 시간여행을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이진영기자 송고시간 2016-03-03 09:41

한국관광공사 3월에 가볼만 한 옛 절터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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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충남 보령의 성주사지는 폐사지가 보여주는 황량한 공간을 넘어 아름다움을 대표할만한 크고 유서 깊은 절터로 손꼽히고 있다.(사진제공= 보령시청)

충남 보령의 성주사지는 폐사지가 보여주는 황량한 공간을 넘어 아름다움을 대표할만한 크고 유서 깊은 절터다.
웅장한 건축물들이 없고 최소한의 필요만을 담은 복원일지라도 천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성주사지에는 사적 제307호로 국가 지정 문화재인 ▲국보 제8호 낭혜화상탑비 ▲보물 제19호 오층석탑 ▲보물 제20호 중앙 삼층석탑 ▲보물 제47호 서 삼층석탑이 있고 충남도 지정문화재로는 ▲유형문화재 제26호 동삼층 석탑과 ▲제33호인 석등이, 문화재자료에는 ▲제140호 석계단 ▲제373호 석불이 있어 다양한 문화유산의 보고이다.


특히, 한국관광공사가 ‘지금은 사라진 옛 절터-폐사지를 찾아서’라는 테마로 올해 3월 가볼만한 곳으로 보령 성주사지를 선정함에 따라 봄철 관광지로서 재조명 받게 됐다.


◇선의 효시-구산선문 중 가장 많은 승려 배출


성주사는 백제 시대에 오합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진 절이며, 전사한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호국 사찰이었다. 백제 멸망 후 폐허가 되었다가 통일 신라 시대 당나라에서 선종 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온 무염대사가 다시 크게 일으켰고 성주사(聖住寺)라 했다.


통일신라 말기에 많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 전국에 선종불교가 크게 유행해 선종 불교의 중심지 절이 전국에 9개가 세워졌는데 이를 구산선문이라 하며 이중 하나가 성주산문으로 그 중심지가 성주사이다.


성주산문은 구산선문 중에서도 가장 크고 한때는 2000여 명의 승려가 머무는 등 많은 신도를 거느렸으며 무염대사는 당시 최고의 선종 승려였다.


성주사는 조선시대까지 1000여 년 동안 존속하다가 임진왜란 이후 소실됐고 지금은 그 터와 몇 가지 유물만 남아 있어 옛 성주사의 모습을 짐작케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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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충남 보령의 성주사지는 폐사지가 보여주는 황량한 공간을 넘어 아름다움을 대표할만한 크고 유서 깊은 절터로 손꼽히고 있다.사진은 사적 제307호로 국가 지정 문화재인 국보 제8호 낭혜화상탑비.(사진제공= 보령시청)

◇최치원의 사산비문 중 하나인 ‘보령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낭혜화상 무염의 행적이 모두 5000여 자에 달하는 장문으로 적혀있는 ‘보령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의 지은이는 최치원이고, 글씨는 그의 종제 집사시랑(執事侍?) 인연(仁?)이 썼다.



비신 높이 263㎝, 너비 155㎝, 두께 43㎝. 국보 제8호. 전체 높이 4.55m에 달하는 거대한 외형에 듬직하고 아름다운 조각수법을 구사해 신라시대 석비를 대표할 만하며 남포오석을 사용해 귀부 일부에 일부 손상이 있을 뿐 거의 완전한 상태로 보존돼 있다.


무염대사의 일생과 업적, 성주사를 일으키고 선종을 전파한 내용이 낱낱이 적혀있으며 특히 신라의 골품과 고어(古語)를 연구하는 자료로서도 귀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성주사지는 성주사의 절터를 포함한 국보 1개와 보물 3개 등 다양한 문화유적의 총람으로 역사와 문화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으며, 인근 성주산 자연휴양림 편백나무 숲에서는 힐링을, 석탄박물관에서는 아이들의 체험학습을, 개화예술공원에서는 아름다운 예술작품과 꽃을 감상할 수 있어 가족단위나 연인들의 관광체험 일일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다가오는 따뜻한 봄날에 보령 성주사지에서 문화와 역사의 숨결을 느껴 보는 것도 낭만의 봄을 만끽하는 색다른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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