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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진주성 2차 전투 순국 삼장사 고종후 추모제 4월 2일 개최

[경남=아시아뉴스통신] 김회경기자 송고시간 2016-03-31 17:37

기념사업회의 노력으로 역사적 재조명, 전국 각지에서 관심 커져
임진왜란 진주성 2차 전투 순직 고종후 장군 초상화.(사진제공=기념사업회)

1593년 임진왜란 진주성 2차 전투에서 순국한 촉석루 삼장사 고종후(高從厚, 1554~1593) 장군을 기리는 추모제가 선생의 묘소가 있는 진주시 이반성면 발산고개 인근에서 4월 2일 오전 11시 열린다.

이번 추모제는 진주성 전투를 테마로 기획된 진주남강유등축제는 국내외적으로 유명해진 반면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산화한 의병장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받음에 따라 고종후 선생 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기획됐다.

아울러 진주문화원과 진주향교, 국립진주박물관, (사)진주문화연구소, 경상대학교를 비롯한 4개 종합대학 등 역사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진 전문가들이 진주성전투의 사실을 후손들에게 정확하게 알리고, 고종후 복수의병장을 재조명하기 위한 의미도 담고 있다.

이번 추모제에는 후손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300여명이 참석해 효열공 고종후 복수의병장을 기리게 된다.

효열공 고종후는 우리나라 전란사(戰亂史)에서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던 임진왜란 당시 우리 민족사에 혜성처럼 빛난 촉석루 3장사(三壯士) 중 한분이다.

그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충열공(忠列公)과 함께 의병을 모병하고 동생과 더불어 전남 태인, 전주, 여산, 은진, 연산, 충남 진산을 거쳐 금산에서 싸우다가 아버지와 동생을 잃게 됐다.

1593년에 다시 승려 등 1000여명을 모병한 후 부친과 동생의 죽음, 그리고 국토를 유린한 왜병에 복수한다는 의미로 복수의병장(復讐義兵將) 이름을 사용해 도처에서 전투를 하다가 진주성이 위기임을 알고 의병 400여명과 함께 진주성 전투에 참여해 장렬히 전사했다.

임진왜란 진주성 2차 전투 순직 고종후 장군 묘소. /아시아뉴스통신=김회경 기자

기념사업회는 단순한 역사자료의 수집에만 노력을 기울인 것이 아니라 고영두 회장을 필두로 고종후의 정신을 지역민과 청소년들에게 알리고 계승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해 ‘준봉 고종후의 수평적 리더십’ 을 발간하는 등 젊은이들의 감각에 맞은 콘텐츠 개발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이 책에서 인상적 부문은 고종후장군과 400명의 의병이 충무공의 '사즉생(死卽生)'보다 더 비장한 각오인 '사즉사(死卽死)'로 진주성 전투에 참전했다는 것과 1593년 6월 1일(선조26년6월1일)에 성의 동문이 뚫리자(침공되자) 김천일, 최경회 등과 청당(聽當)에서 “여기를 우리들이 죽을 장소로 합시다” 하고 북쪽으로 향해 두 번 절하고 남강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다.

추모제를 주최한 기념사업회 회장인 고영두 박사는 “고종후장군의 면모가 바로 의병들의 죽음과 삶을 함께 할 것을 맹약하며, 그를 믿고 따르게 한 원동력 이였을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라며, “진주성 전투와 고종후 장군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과 추모하는 것은 진주시민으로서 진주와 조선의 비극을 한국에, 미래에, 역사에 알릴 책무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와 덧붙여 그는 “이날 이 추모제를 계기로 많은 호국 영령들의 행적을 지속적으로 선양해 온 국민이 올바른 국가관정립을 통한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를 간곡히 기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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