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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의 7월 세시풍속] "풋굿"... 두레판 노동축제

[대구경북=아시아뉴스통신] 남효선기자 송고시간 2016-07-03 22:13

경북 울진군 온정면 조금리 원수곡 마을의 서숙 밭매기‘./아시아뉴스통신=남효선 기자

여름이 들어선다는 '입하(立夏)'를 지나 무더위가 시작되는 '소서(小曙)' 무렵부터 농촌의 일상은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날의 연속이다.

물론 한해의 살림살이를 장만하는 농사일 때문이다.

여름의 어원쯤으로 여겨지는 '녀름짓다'에서 확인할 수 있듯 입하부터 칠월 백중 무렵까지는 밭매기와 논매기를 하느라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 농사철 중에서도 가장 바쁜 농사철이다.

여섯 살 나던 해부터 실한 농군 감이라는 소리를 들어 온 평생 농꾼인 헌수아배는 유월 한 달 내내 서숙 밭과 논바닥에 엎드려 보냈다.

논둑을 바르고 못자리를 만들고, 써레질을 하고 모심기를 하는 일은 그래도 일다운 일이다. 아무래도 힘과 품이 많이 드는 상 농군에 딱 어울리는 농사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슴팍이 옴팡지게 벌어진 소를 끌며 논 한 배미씩, 한 배미씩 척척 갈아엎고 나면 절로 신이 나는 일이기도 했다.

콩밭 매는 할머니의 휴식./아시아뉴스통신=남효선 기자

그러나 밭매기는 사내가 하기는 영 우스운 노릇이다.

하루 종일 땡볕에 엎디어 쪼그려 앉은 몸새로 호미질을 한다는 게 여간 어렵거니와, 도무지 실없는 웃음은 왜 그리 나오는지, 도대체 신명 없는 일 중의 하나이다.

그렇다고 밭작물을 소홀히 해서는 절대 안된다. 서숙과 수수농사는 이밥보다 훨씬 요긴한 식량이기 때문이다.

서숙 밭은 보통 세벌매기를 해야 마무리된다.

서숙은 6월 하지 무렵 보리를 거둔 자리에 파종한다.

씨를 뿌릴 때, 조밀 발아를 억제하기 위해 서숙 씨를 흙과 함께 섞어 뿌린다.

파종한 뒤 닷새쯤 지나면, 서숙 싹이 돋고 열흘이나 보름쯤 지나면 '서숙 밭 아시매기(초벌매기)'가 시작된다.

이때부터 울진지방 전통사회 농가 아낙네들은 "아침상 물리고 서숙 밭으로 나가서 해가 져야 집에 돌아오는" 바쁜 생활의 연속이다.

아시매기가 끝나고 열흘 쯤 뒤에는 두벌매기를 하고. 백중 무렵에 세벌매기가 얼추 마무리 된다.

이 때쯤이면 '서숙 밭의 고랑에 뿌려놓은 수수밭 매기'도 함께 마감된다.

울진지방의 논매기 모습./아시아뉴스통신=남효선 기자

◆ '풋굿'은 고된 농사일을 삭히는 노동축제

'풋구먹기'는 바로 서숙밭매기와 논메기가 끝나는 칠월 백중 무렵에 펼쳐진다.

풋구먹기는 지방마다 부르는 명칭이 다양하지만 울진지방 등 동해연안에서는 '농구먹이기', '풋굿', '호미씨시미', '써래씨시미', '초연(草宴)' 따위로 불렀다.

풋굿은 일 년 내내 고된 농사일에 매달리는 농군들을 위한 "노동축제"이다.

때문에 이날을 ‘머슴날’이라고도 했다고 고문헌은 전한다.

전통사회에서 일꾼들을 데리고 있는 집에서는 풋굿날 일꾼들이 먹고 즐길 수 있는 모든 음식을 장만한다.

고된 농사일을 마쳤으니 하루쯤 실컷 먹고 마시며 몸에 밴 피로를 털어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노동절인 셈이다.

헌수아배는 풋굿날이면 괜스레 마음이 설렌다.

뭐니 뭐니 해도 눈처럼 하얀 이밥과 막걸리를 배불리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먹을거리만 풍성한 게 아니라 걸쭉한 놀이판도 하루 종일 벌어진다.

사실 헌수아배가 풋굿날을 기다리는 것은, 동네 머슴들끼리, 또 이웃 농군들끼리 한데 어울려 신명나게 두들기는 메구장단이 신명을 돋우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어깨 너머 익힌 메구 장단은, 한 여름 폭염을 씻는 데는 최고의 신명이다.

어릴 적부터 익힌 메구 장단인지라 헌수아배의 메구솜씨는 인근 마을까지 호가 났던 터이다.

논매기와 서숙밭 세벌매기를 마치면 농군들은 '풀찌기'에 나선다.

풀찌기는 산이나 들로 나가 참풀을 베어 소마구(우사)에 넣어 깔아 퇴비를 만드는 일이다.

농사규모가 큰 집에서는 풀찌기를 위해 일꾼을 사기도 한다. 이를 '놉'이라 부른다.

이렇게 풀찌기가 끝나면 마을에서는 풋굿날을 잡는다. 풋굿날은 일꾼을 데리고 있는 집의 가장들이 모여 정한다.

풋굿날에 비가 내리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으며, 이날 주인집들은 '용떡'을 장만해 논매기가 끝난 논에 '용기(龍旗)'를 세우고 용떡을 논에 묻은 뒤 풍농을 기원하는 '용제(龍祭)'를 지냈다.

최근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울진지방의 소써래질./아시아뉴스통신=남효선 기자

◆'풋굿'판 메구장단에 고된 노동 훌훌 벗어던지고....

풋굿은 마을 전체에서 벌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헌수아배 마을인 북면 신화리에서는 같은 성황당을 모시는 마을사람들끼리 펼친다.

성황당 중심의 의례공동체가 곧 생업공동체인 셈이다.

풋굿날이 정해지면 일꾼을 둔 집에서 '반원공사'를 열고, 풋굿 장소와 음식 분배 따위를 의논한다.

헌수아배네 마을의 풋굿 장소는, 언제나처럼 마을에서 시오리쯤 떨어진 '구수골 가마소'이다.

얼굴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계곡에 허연 거품을 물고 내리쏟아지는 폭포가 일품인 곳이다.

더구나 가마소에는 풋굿 신명에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는, 꺽지니 퉁가리니, 버들치 따위의 고기가 우글거리는 곳이기도 하다.

가마소 불가(강모래) 한 켠에 '농자지천하대본'이라 쓴 농기를 꽂아 놓는다.

가마소 불가에 앉아마자 막걸리 잔이 한 순배 좌석을 돈다. 논매기 할 때 '참'으로 마시는 막걸리와는 또 다른 맛이다.

주인집에서 장만해 온 음식을 아낙들이 좌중에 죽 늘어놓는다. 하얀 백설기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애호박으로 부친 '노치(찰곡물로 만드는 전)'도 입맛을 돋우고 인근 죽변항에서 장만해 온 싱싱한 물가자미회는 금방 동이 난다.

싱싱한 횟감은 풋굿날 아니면 언감생심 생각도 못할 먹거리이다.

해가 중천에 뜨면 좌중은 이미 막걸리에 취해 거나한 분위기이다.

헌수아배가 깽쇠(괭가리)를 치며 물가를 돌며 한바탕 신명을 돋군다.

칠용이 아배가 농기를 들자 농군들 모두 일어나 징물(풍물)을 들고 메구판을 펼친다.

한바탕 신명나는 메구판이 계곡을 뒤흔든다.

칠용이 아배가 수건을 말아 등에 넣고 예의 곱사춤을 익살맞게 춘다. 칠용이 아배 곱사춤은 흥부장터를 '울렸다 웃겼다' 하는 솜씨로 이름나 있다.

한바탕 메구판이 끝나면 씨름판이 벌어진다.

주인집에서 광목 1필과 목수건 세장을 상품으로 미리 마련해 주었다. 씨름판의 장원은 언제나 헌수아배 몫이다.

씨름판이 끝나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며 농사 대풍을 예고하듯 한바탕 소낙비가 쏟아졌다.

울진지방의 풍물. 사진은 울진군 평해읍 단오제 모습./아시아뉴스통신=남효선 기자

◆ 전통문화축제로 복원되는 '풋굿'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에 따르면, 논매기와 세벌밭매기가 끝나는 칠월 중에 농가에서는 백중날 머슴들과 일꾼들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고 쉬도록 하여 즐겁게 놀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하며 이를 '백중놀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백중날이면 머슴들과 일꾼들은 주인집에서 특별히 장만한 아침상, 새옷과 돈을 받는데, 이것을 "백중돈 탄다" 라고 전한다.

또 백중돈을 탄 일꾼들은 장터에 나가 물건을 사거나 놀이를 즐기기도 하고, 이 무렵 서는 장을 특별히 '백중장' 이라 하여 "풍물을 울리고 씨름 등 갖가지 흥미 있는 오락과 구경거리가 장판에서 벌어졌다"고 전한다.

풋굿을 벌이는 칠월은 "어정 7월, 동동 8월"이라는 향언에서 알 수 있듯, 가을 추수를 앞두고 잠시 허리를 펼 수 있는 시기이다.

칠월과 함께 풋굿이 한바탕 꿈처럼 지나면 다시 농군들은 가을걷이가 끝날 때까지 농사일에 종일 매달린다.

몇 해 전부터 풋굿이 전통문화축제로 되살아났다.

광산김씨 집성촌인 안동 와룡면 오천리 군자마을의 '풋굿축제'가 그것이다.

지난 2004년에 처음 복원된 뒤 올해로 11회째 전통문화를 이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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