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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교회 정영구 목사, '희년에 참여한 복 있는 사람들'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8-08 04:00

하나교회 담임 정영구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희년에 참여한 복 있는 사람들

누가복음의 네 가지의 복과 네 가지의 화는 세상과 다른 복의 관점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약의 희년에서 보면, 정말로 가난한 자들이고, 빼앗긴 자들이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이라는 원복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희년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네 가지 복이 있는 사람은.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 거절당한 자들입니다. 가난한 자와 주린 자와 우는 자와 거절당한 자들은 모두가 주님을 통해서 오늘, 지금 희년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들, 그들이 희년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필요 때문에 주님께 왔든, 또는 제자가 되고 사도로 칭함 받아 주님의 희년을 살기로 작정을 했든, 오늘 지금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가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희년으로 오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가난한 자들은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까요?

첫째는 자기를 부정하고 부인하는 사람으로, 주님께 말씀을 듣기 위해 달려 온 사람들입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 왔든, 소문을 듣고 왔든, 제자가 되기 왔던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왔다면 그들은 가난한 자입니다

둘째 가난한 자들은 주님만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힘쓰는 것이 부정의 의미도 있지만 17절의 말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었다면,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인생들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은혜가 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어떤 곳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은혜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왔습니다. 그것 밖에 소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눅 6:24)

이미 위로를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올 이유가 없습니다. 가난한 자가 마지막 희망인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사방에서 나아오는 것입니다. 

주린 자가 배부름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첫째 주린 자는 속에 있는 본능을 제어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사람이 본능을 제어하지 못하면 짐승처럼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본능을 제어하는 은혜를 다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리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서 살고자 본능을 제어하는 절제의 삶을 삽니다. 절제하려면 하나님이 주신 창조의 질서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살아야 합니다. 주린다고하는 둘째는 충동을 제어하는 자입니다. 충동은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려서 과잉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과 같이 주린 자라야 바울과 같이 푯대를 향해 달려갈 수가 있습니다. 갈지자로, 허공에 주먹질하는 삶은 주린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자신이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충동대로 행동합니다. 셋째 주린 자는 자신의 취향과 성향을 제어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취향과 성향을 살리다가는 하나님과 멀어지고 맙니다. 상상력도 하나님이 주신 은사입니다. 하지만 지나친 상상력은 공상과 허탄한 말을 하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발을 땅에 딛지 않고 무언가를 이루라고 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취향과 성향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취항과 성향을 넘어서지 않으면 우리는 늘 배부른 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는 것은 배움이 있는 사람입니다. 배워서 몸을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치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땀이 있고 눈물이 있고 피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는 자입니다.

우는 자들은 첫째,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마음 밭을 일구려고 우는 사람들입니다. 마음 밭을 일구는 영적인 배움이 구원에 이르는 회개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인지 자신의 취향인지 보고 있어야 합니다. 

둘째, 우는 자들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희생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웁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많은 말씀을 들었지만 그 말씀으로 몸을 쳐서 복종시킬 수 없습니다. 이것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한 번에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랑에도 연습이 필요하고, 더 큰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작은 것부터 내 몸으로 실천해봐야 합니다. 마지막 우리는 주님과 함께 희생 제물로 드려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희생의 재물로 살아간다면 제물은 순한 양으로 자신의 이익과 자신의 안위를 구하지 않고 기꺼이 내어주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셋째, 감사의 말을 배우기 위해서 우는 사람들입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들은 원망과 불만과 불평의 삶으로 살기 때문에 제대로 울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우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고 실망했지만 그래도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진정한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감사는 명령입니다. 감사를 위해 우리의 믿음을 사용해야 합니다.

넷째, 우는 자들은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도록 매일 매일 성장하고 성숙해 나가는 것을 배웁니다. 은혜의 자리, 은혜의 시간, 은혜의 사람에 민감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위해 울고 이것을 위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내가 그것을 위해 하나님 앞에 힘쓰고 애쓰고 가장 귀하게 여기고 사는 것이 우는 자들입니다.

눅 6:17~26, 왕상 22:24~28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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