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시모노세키 아카마 신궁./아시아뉴스통신=유지현 기자 |
최근 일본은 엔저에 탄력을 받아 중국에 맞먹을 정도로 한국 관광객이 선호하는 관광지로 급부상했다. 미식, 온천, 쇼핑 등 일본 관광에는 다양한 매력이 있지만 때로는 일본 땅에서 우리 선조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보람찬 일일 것이다. 시모노세키와 히로시마에서 만나볼 수 있는 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소개한다.
![]() |
| 시모노세키 아카마 신궁./아시아뉴스통신=유지현 기자 |
◆시모노세키
조선통신사는 정사(正使), 부사(副使), 종사관(從事官)의 삼사(三使)를 필두로 외교사절, 학자, 도공, 화원, 예인 등 총 4~500명 정도의 대규모 사절단이었다. 한양(창덕궁)에서 출발해 에도까지, 즉 현재의 서울에서 도쿄까지 반년 이상의 기간 동안 왕복 3000킬로미터 이상의 대장정을 소화했다.
한양에서 부산까지 육로로 이동한 조선통신사는 여섯 척의 배로 쓰시마에 도착한 후 이키, 아이노시마, 아카마가세키(시모노세키), 카미노세키, 카마가리, 도모노우라, 우시마도, 무로츠, 효고, 오사카 등 여러 곳에 기항 후 강과 육로를 따라 하코네, 오가키, 나고야, 오카자키, 하마마쓰 등 각지를 거쳐 가며 조선 문화를 전파하고 현지인들과 교류했다. 조선통신사는 당시 일본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국가적 행사였다. 어느 지역에서나 극진한 환대와 함께 구경하러 나온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뤘다.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는 일본 본토에서 조선통신사가 처음 기항했던 지역이다. 12회의 조선통신사 중 11번에 걸쳐 기항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 |
| 조선통신사 상륙엄류지지 기념비./아시아뉴스통신=유지현 기자 |
통신사가 상륙했던 자리는 현재 아미다지 공원이다. 공원에 들어서면 ‘조선통신사 상륙엄류지지 기념비’가 눈길을 끈다. 조선통신사 기항지에 한일 선린우호의 증표를 남기기 위해 야마구치현 지사가 한국 포천에서 공수해온 화강석으로 제작한 것이다. 비문은 당시 한일의원연맹 회장이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친필이다. 지난 2001년 8월 25일 열린 제막식에는 당시 시모노세키 중의원이었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어디서나 조선통신사 접대는 극진했다. 1년 예산에 맞먹는 비용을 조선통신사 접대에 사용했다니 그 극진함을 짐작케 한다. 시모노세키에서도 매번 임시로 바닷가에 목재 부교를 설치해 조선통신사 일행이 편히 상륙할 수 있도록 했고 통신사가 떠난 뒤에는 철거했다.
아미다지 공원 뒤에는 조선통신사 일행의 숙소로 사용됐던 아미다지(현 아카마 신궁)가 자리하고 있다. 아카마 신궁은 12세기 경 8세의 나이로 바다(단노우라)에 몸을 던져 자결한 안토쿠 일왕을 바로 그 자리에 모신 중요한 신사다.
![]() |
| 조선통신사 부사 임수간 시문(위), 이성린作 사로구승도 사본(아래)./아시아뉴스통신=유지현 기자 |
아카마 신궁에는 지금도 조선통신사의 흔적이 보존돼 있다. 우선 조선통신사의 화원 이성린이 그린 "사로구승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사본이 있다. 조선통신사 화원의 기록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꼽히는 사로구승도는 총 30점으로 구성돼 있으며 그 중 바다 위에서 아미다지를 그린 작품의 사본이 아카마 신궁에 소장돼 있다. 여기에는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조선통신사를 위한 부교의 모습도 담겨 있어 일본의 기록을 뒷받침 한다.
또한 아카마 신궁에는 조선통신사 부사 임수간이 친필로 써서 남긴 시문이 소장돼 있다. 시문은 그곳에서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은 안토쿠 일왕을 추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통신사는 매번 관례처럼 아미다지에서 안토쿠 일왕 추모 시문을 썼다고 전해진다.
시모노세키의 특산물은 다름 아닌 복어. 시모노세키를 방문했다면 복어요리는 필수다. 곳곳에서 복어회를 비롯해 다양한 복어요리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복어포나 복어빵은 선물용으로도 적당하다.
![]() |
| 시모카마가리 고치소이치반관./아시아뉴스통신=유지현 기자 |
◆히로시마
조선통신사가 시모노세키를 거쳐 11차례 들렀던 히로시마현 시모카마가리 섬은 조선통신사를 가장 융숭하게 접대했던 지역이다. 지금도 가을이면 조선통신사 재현 행렬이 펼쳐진다. 섬이지만 다리를 건너 육로로 들어갈 수 있다.
시모카마가리에는 일본 유일의 조선통신사 자료관이 있다. 지역 역사관 쇼토엔 내에 위치한 ‘고치소이치반관’이 바로 그것. 자료관 이름인 "고치소이치반"에는 과거 조선통신사 일행과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했던 쓰시마 번주가 "시모카마가리의 접대가 최고"였다고 평했다는 유래가 담겨 있다.
고치소이치반관에는 조선통신사 선박의 모형을 비롯해 각종 그림, 서문과 함께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한 모형과 조선통신사 접대음식 모형이 전시돼 있어 당시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다.
고치소이치반관에 들어서면 먼저 조신통신사 선박 모형이 눈길을 끈다. 한국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조선 선박의 섬세한 모형이다. 김주한 서울대 명예교수의 고증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 |
| 753선 중 ‘5’(위), 3즙15채(가운데), 조선통신사 접대음식 모형(아래)./아시아뉴스통신=유지현 기자 |
고치소이치반관의 한쪽 벽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 음식 모형을 보면 조선통신사를 지극정성으로 접대한 것이 실감난다. 통신사의 삼사 3인에게는 아침, 저녁으로 753선의 요리로 환영의 의식을 진행했는데 이름처럼 7가지, 5가지, 3가지 요리상이 한사람 한사람에게 연달아 나오는 것이다. 753상은 먹는 시늉만 하는 의식에 해당하고 이후에 3즙15채, 즉 3가지 장국과 15가지 요리가 나와 식사를 했다. 모형으로 전시된 753선, 3즙15채 한상 한상이 1인분씩이라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일본은 7세기 덴무일왕이 육식금지령을 내린 이래 메이지유신 전까지 1200년간 짐승의 살생과 육식을 금기시 했다. 육류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일본에서 조선통신사에게 고기를 접대하기 위해서는 사냥을 하거나 일본 내에 거주하는 중국인 등을 통해 어렵사리 구해야 했다. 희귀하다 보니 가격도 비싸 꿩 한마리에 현재 가치로 약 150만원 정도에 거래됐다는 사례도 전해진다. 그래도 조선통신사 접대에 비용은 문제가 아니었다. 황금까지 박아서 화려하게 만들어진 그릇과 상은 접대에 한번만 사용하고 바로 부숴버려 극진한 접대를 과시했다.
![]() |
| 고치소이치반관의 각종 전시물./아시아뉴스통신=유지현 기자 |
고치소이치반관에서는 다양한 그림과 모형으로 조선통신사 행렬을 볼 수 있다. 행렬의 복색에서 조선통신사 일행보다 훨씬 많은 수의 일본인이 호위 및 짐꾼 등으로 동행했음을 볼 수 있다. 말이 통하지 않지만 일본 문인들과 한자로 필담을 나누며 교류한 내용도 하나하나 살펴보면 소소한 재미를 느끼게 한다.
한편 부산문화재단과 일본 조선통신사연지연락협의회가 주축이 되어 구성된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한일공동추진위원회가 오랜 협력의 결실로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물 수백점을 3월 중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신청할 예정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로 한일 우호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2016년이 조선통신사 재조명에 있어 뜻 깊은 해이자 관광·교육여행 활성화의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해 본다.
J-ROUTE 사이트(www.jroute.or.kr) 및 페이스북(www.facebook.com/joinjroute)을 방문하면 조선통신사 관련지역을 비롯한 일본 여행의 보다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 |
| 취재협조 : 일본정부관광국(JNTO)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