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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의 선구자 MG원세종새마을금고 이성원 이사장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정혜미기자 송고시간 2017-01-11 03:34

'무호적자 호적 만들어주기 운동' 선도한 공로 인정받다
MG원세종새마을금고 이성원 이사장./아시아뉴스통신=정혜미기자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흑인인권운동가 넬슨만델라(Nelson Mandela)는 자유와 평화를 대표하는 지도자의 상징이다.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고난을 자처한 그의 헌신적 삶은 인류에게 희망을 전하는 가운데, 대한민국 인권운동의 초석을 다진 이성원 MG원세종새마을금고 이사장이 쌓아온 숭고한 업적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한국의 넬슨만델라’로 평가되는 이 이사장은 일제 해방과 6.25전쟁 등 사회격동기에 부모 형제를 잃고, 호적까지 상실한 무적자들을 위해 인권운동을 펼쳐온 인물이다.

당시, 플랜카드를 어깨에 메고 ‘무호적자 호적 만들어주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쳐 8만여 명에게 구제의 길을 열어준 바 있다.

더불어 전국의 다리를 찾아다니며 ‘우리의 가난을 우리가 몰아내자’고 자립갱생을 역설, 걸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준 그의 삶은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준다.
 
무호적자 호적 만들어주기 캠페인 주도한 이성원 이사장.
(사진제공=이성원 이사장)

◆세계인권의 날 ‘무호적자 호적 만들어주기 운동’을 주창

지난 1965년 12월 13일자 동아일보에서는 ‘가고 싶어도 못가는 軍隊’란 제목으로 무적자 관련 기사가 보도됐다.

당시 신문 지면에는 각 지방에 산재한 BBS(청소년의 형제맺기운동) 회원들 중 호적이 없어 징병적령자가 돼도 군 입대를 하지 못하고, 구직활동도 제한을 받아 대책이 시급하다는 내용이 부각됐다.

당시 조치원YWCA주최로 열린 인권옹호 좌담회에서 조치원BBS 책임자였던 이 이사장은 “BBS 회원 50명 중 13명이 호적이 없고, 그 중 7명이 징병연령이 되도 군에 지원을 못하는 등 국민의 기본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밝히며 무적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렸다.

이후 1968년 7월 8일자 동아일보 기사에서는 ‘戶籍없는 不遇청소년 就籍시켜주자’란 헤드라인으로 전국적으로 ‘호적만들어주기 운동’을 벌이며 불우환경 청소년들의 앞날을 밝게 열어야 한다고 호소하는 이성원 이사장의 활동상황이 담겼다.
 
1968년 7월 8일자 동아일보에서는 이성원 이사장이 펼치는 인권운동에 관해 조명했다.
(사진제공=이성원 이사장)

당시 ‘무호적 청소년들에게 호적을’이란 플랜카드를 어깨에 둘러멘 그의 사진도 함께 실리며 화제를 낳았다.

이후 매스컴에서는 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들을 모아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기술을 익히도록 지도할 뿐만 아니라, 사재를 털어 호적을 취득하게 도와주며, 범국민적으로 인권운동을 선도하는 이 이사장의 아름다운 발자취를 조명했다.

조선일보, 신아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한국일보 등 각 언론사에서 앞 다퉈 그의 기사를 보도하면서 그의 인권옹호 활동에 대해 집중했다.

당시 민간인으로서 무호적자들에 대한 인권의식에 경종을 울린 최초의 범국민적 인권수호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의 폐허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던 1960년대, 무적자수는 무려 12만 명이었습니다. 이 중 병역기피자나 범법자 4만 명을 제외한 8만 명은 갖가지 사연으로 호적을 갖지 못해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권리나 의무를 행사할 수 없는 처참한 상황이었습니다. 무적자들은 학교 교육뿐 아니라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고, 병역의 의무는 물론 결혼을 해도 혼인신고도 못했으며, 자식을 낳아도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때 이 이사장은 호적이 없음으로써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는 무적자들이 비참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1965년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 ‘호적만들어주기운동’을 주창했다.

무적자들의 고통스러운 사연을 알리며 전국에 호소한 그의 인권활동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성원 이사장은 대통령, 대법원장, 국무총리, 내무부장관, 보건사회부장관, 서울시장, 각 시?도지사 변호사협회장, 중앙청소년보호대책위원회, 새싹학회장, 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장 및 각 언론사에 호소문을 발송하고, 전국의 거리 캠페인을 선도해 무적자들에게 호적을 찾게 해준 대한민국 1호 인권운동가다.

민간이 시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는 오직 무적자들의 인권을 찾아주기 위한 일념으로 혼신을 다했으며, 그의 불굴의 의지는 결실을 맺었다.

그가 무적자들을 사회 안전망에 들여놓고, 국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 법무부로 하여금 무적자들을 구제하는 방안이 발표됐고, 호적정리와 더불어 주민등록증 도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성원 이사장은 전국의 다리 밑 걸인소굴을 찾아다니며 '우리의 가난을 우리가 몰아내자'고 외쳤다.
(사진제공=이성원 이사장)

◆전국의 걸인소굴에서 ‘우리의 가난을 우리가 몰아내자’고 부르짖다

“군전역후 고향에 돌아왔을 때 거리에는 배고픔에 굶주린 아이들이 가득했습니다. 부모의 따뜻한 품에서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집도 없이 사회적 냉대와 멸시를 받으며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구걸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파,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이 이사장은 조치원역 거리를 배회하는 불우한 청소년들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철도역무원으로 봉직하며 부랑아들을 위한 봉사를 본격화했던 그는 역 주위를 배회하며 앵벌이를 하고, 어두컴컴한 다리 밑에서 생활하는 걸인들을 선도했다.

모두가 외면하는 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따뜻한 정을 베풀었던 이성원 이사장. 거리의 천사들을 위해 따뜻한 안식처인 ‘희망의 집’도 지어줬다. 국가 보조금 없이 순수 사재를 털어 희망원을 운영하면서 온갖 어려움을 겪었지만,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들을 보살폈다.

또한, 이 이사장은 청주 무심천교, 대전 목척교, 천안 남천교, 예산 예산천교, 홍성 광천교, 광천 옹암교, 대천 대천교 아래 걸인소굴을 누비며, 얻어먹던 깡통을 버리고 ‘우리의 가난을 우리가 몰아내자’고 외쳤던 국내 최초 새마을정신을 전파한 장본인이다.

자립갱생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든든한 나침반 역할을 했던 그의 노력으로 당시 조치원역 앞을 배회하던 불우한 청소년들과 다리 밑에서 참혹하게 살던 걸인들은 이제 학교도 졸업하고 직장도 잡아 가정을 이루는 등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 이사장은 농촌 청소년운동의 일환으로 4H구락부 운동과 가축보급 운동도 펼쳤으며, 학교순회 선도 교육에도 적극 나섰다.

또 고아들이 어엿한 사회인이 될 수 있도록 농사짓기, 철사 수공품 만들기, 운전기술 등을 가르쳤다.
 
1970년 3월, 8쌍의 합동 결혼식을 올렸고 당일 결혼식장에는 1천 5백명의 축하객이 몰렸다.(사진제공=이성원 이사장)

1970년대에는 국내 최초 민간인 주도 합동결혼식을 열어 1,500여명의 하객들의 축하 속 희망원 부부들을 위해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한 바 있다.

“일제치하에 충청도 조치원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 때 해방을 맞이했고, 중학교 1학년 때 6.25사변을 당해 정변의 소용돌이와 피난길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조치원역에서 근무하던 중에 4.19혁명이 일어났고, 청소년 선도에 열중할 때 5.16혁명이 있어 혁명의 1등 공신인 선배가 중앙정보부요원으로 발탁하겠다는 것도 사양하고, 국고 보조 받지 않고 땅 팔아 순수하게 사회봉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12.12정변의 혼란한 틈을 타 허위모략에 대전형무소까지 다녀오는 등 처절하게 살아왔죠. 그래도 거리의 천사들을 선도하고, 빈농의 자녀들에게 가축을 기르게 해주어 희망을 안겨줬고, 무적자들을 위해 호적만들기 운동을 펼쳐온 인생길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1964년 조치원에서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의 따뜻한 안식처인 희망의 집을 짓다.
(사진제공=이성원 이사장)

그는 딱한 처지의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본인 성격에 대해 “가난한 백성을 위해 ‘걸인청’을 만든 토정 이지함 선생의 16대 손이자, 가족보다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선친(국가유공자 이영복선생)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며 대를 잇는 봉사정신을 전한 바 있다.

그간 이성원 이사장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시민연합의 창설위원, 경제정의실현연합, 흥사단, 민족통일운동 한국유권자연맹, 전국시민단체연합 등에 몸담아 반부패, 바른 언론, 참교육, 경제정의, 환경보전, 복지증진, 민족통일 등 민주화를 위한 시민운동도 꾸준히 전개해왔다.

지난 2000년에는 UN에서 열린 세계 NGO대회에 한국인 대표로 참석했으며, 그간 나눔의 상, 인간상록수상 등을 비롯한 각종 봉사 관련 수상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 2016 대한민국 소비자선호 브랜드 대상 인권옹호 부문 대상, 2016 코리아 파워 리더 대상 인권수호 부문 대상 수상의 영예를 차지하며 인권운동의 공로를 높이 평가받았다.

청소년 선도와 사회 개혁에 앞장서는 이성원 이사장은 앞으로도 한결같은 봉사정신으로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란 포부를 전했다.

사랑의 정(情)을 중시하며, 소외계층을 위해 따뜻한 나눔을 전달해온 진정한 휴머니스트 이성원 이사장의 봉사에 대한 열정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1998년도에 합강둔치에서 가족 체육대회를 연 희망의 집 가족들은 '우리 잘살고 있다'고 외쳤다.
(사진제공=이성원 이사장)

2017년 희망의 새 시대를 맞이해, 그의 투철한 인권수호와 봉사에 대한 신념이 미래를 개척하는 현대인들에게 용기와 격려가 되길 바란다.

‘인종차별 없는 세상’을 주창했던 넬슨만델라처럼 ‘무호적자들에게 호적을 찾아주자’고 부르짖었던 이성원 이사장의 인권운동은 후세에 길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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