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돈 버는 회사, 한숨짓는 노동자…생활가전 방문판매서비스 노동실태
② 사장을 감독하는 지점장…코웨이·청호나이스·SK매직 특수고용노동자
③ 일터가 아닌 전쟁터…마음도 몸도 온통 상처뿐
④ 노골적인 성희롱·성추행…웃으며 '고객님~' 하는 사연
⑤ '근로자 인정' 필요한 노동자…노동관계법령 개정 절실
최종 인수가를 둘러싼 넷마블(대표 권영식)과 웅진코웨이(대표 안지용) 간 협상이 진행중인 가운데 지난 19일 저녁 차량들이 웅진코웨이 본사 사옥을 지나고 있다./아시아뉴스통신=김도균 기자 |
방문서비스노동자들의 노동현장은 불편과 불안이 상존한다. 고객의 반려견에게 물리고, 물건이 없어졌다고 도둑으로 몰린다. 고객만족도를 빌미로 협박을 하거나 고장이 아닌데도 지속적으로 전화하는 일도 있다. 엉덩이를 만지고 귀엽다며 얼굴이나 팔을 쓰다듬는 일도 다반사다. 칼이나 망치를 들고 죽인다며 위협을 당하는 사례도 있다. 폭언과 반말은 애교수준이다.
계약은 사장님 실질은 노동자…노동관계법령 개정 주장
이 같은 상황은 회사에 소속된 직원이 아니라면 받아들이지 않았을 터. 하지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자율근로소득자, 즉 ‘사장님’이기 때문이다. 물론 방문서비스노동자가 개별적으로 소속된 회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청구를 할 수 있지만,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노동관계법령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독립된 사업주로 보이지만 실질은 고용된 상태이기 때문에 근로자성이 인정될 가능성은 높다는 의견도 있다.
노동관계법령과 별도로 다양한 대안도 제시된다.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아니지만 현상을 완화하거나 줄일 수 있는 내용들이다. 고객과 계약 시 방문서비스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오해와, 방문서비스노동자가 느끼는 불편·불안 등을 충분하게 설명한다. 또한 고객 가정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공유하고, 녹음기능이 있는 호출기를 의무제공하는 방안도 제시된다.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2인1조를 의무화하고 응급출동 시 경찰협조 및 동행을 의무화하는 의견도 있다.
근본적인 접근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방문서비스노동자들이 겪는 문제 중 감정노동은 일부일 뿐이고, 감정노동은 일부 진상고객과 노동자 간 갈등관계로 비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사업주의 책임은 부차적인 것이 되거나 선의의 문제로 오인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방문서비스는 감정노동 아닌 엄연한 폭력…사업주 책임 물어야
방문서비스노동자가 고객에게 당하는 피해상황이 감정노동으로 분류할 만한 것이냐는 것. 방문서비스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당하는 고함이나 욕설, 위협, 괴롭힘, 신체적 폭행, 성희롱 등은 고객에 의한 폭력이라는 것이다. 이는 관련법에 따라 가해자에게는 제재가, 피해자에게는 보상이 필요한 현상이다. 이처럼 폭력이나 괴롭힘, 과중한 업무강도, 산재사고 등이 감정노동으로 인식되는 것은 문제라는 입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방문서비스노동자의 작업중지권 보장과 2인1조 작업, 사용자의 안전배려의무 등을 도입하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방문서비스노동자가 고객 응대과정에서 위험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작업중지권을 발동하는 것으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적극적인 수단이다. 이는 고객 응대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 상황에 대해 상급자에게 보고해 작업중지 명령을 기다리는 작업중지 요청권과는 다른 것이다.
2인1조 작업은 같은 구역에 2명의 담당을 배치하고 근거리에서 다른 직원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유사시 함께 방문하도로 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지난 3월 발표한 공공기관 작업장 안전강화 대책을 통해 위험 작업장에는 2인1조로 근무하도록 의무화하고 신입직원의 단독 작업을 제한했다.
사용자의 안전배려의무는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원청 사업주에게 조치의무 등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안전배려의무는 노동자의 안전·보건에 관한 사용자의 주의의무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다만 방문서비스노동자의 경우 고객 방문응대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고, 이는 사업주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는 장소여서 계약관계에 따른 법적 책임을 묻는 데는 한계가 있다.
웅진코웨이, 청호나이스, SK매직 등 방문판매업체의 노동자성 인정을 두고 노동자와 사용자 측 입장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노동자성 인정 엇갈린 입장…“근로자 인정” vs “사회적 합의 필요”
김순옥 웅진코웨이 코디는 “엄연히 회사의 업무를 하는 노동자임에도 자율근로소득자라는 이름을 붙여 노동자성을 부정당하고 있다”면서 “방문판매서비스노동자에 대한 법적 보장, 안전하게 일할 권리, 4대 보험 등 노동자로서 권리를 찾기 위해 제도개선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웅진코웨이 관계자는 "현재 방문서비스관리자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좋은 노사문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미온적인 입장을 내보였다.
청호나이스 관계자 역시 "엔지니어 조직의 경우 2018년 5월 나이스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를 설립, 개인사업자였던 엔지니어들을 본인의 희망에 따라 정규직 근로자로 전환했다. 또한 플래너 조직 중에서도, 지사장, 팀장 등의 관리자는 정규직 직원"이라고 두루뭉수리 답변했다. 청호나이스는 정기점검 서비스를 진행하는 플래너와, 제품 설치배송 및 AS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로 구성돼 있다.
SK매직 관계자는 "노동자 인정의 경우 과거 판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본인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근무가 가능한 점 등) 좀 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항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방문서비스노동자들은 고객의 폭력, 고객과 갈등, 교통사고 등을 포함하는 업무 중 사고 시 치료 지원이나 휴식시간 보장 등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는 감정노동을 일부 수행할 수밖에 없는 서비스 노동 자체의 본질적인 문제처럼 왜곡할 위험도 있다”며 감정노동의 문제가 아닌 고객에 의한 폭력의 문제로 인식할 것을 제시했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동 법률원)는 “특수고용의 경우에도 일정한 위임, 위탁 등 계약관계가 존재하므로 그에 근거한 안전배려의무 인정이 가능하다”며 “대법원은, 사업주는 근로조건의 개선을 통해 적절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근로자의 생명보전과 안전 및 보건을 유지·증진하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고 소개했다.
법무법인 향법 하인준 변호사는 “(방문서비스노동자처럼) 특수고용노동자는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면서 “하지만 계약의 형식이 아니라 실질이 중요하고, 계약이 체결됐는지가 아니라 실제 노무제공이 있었는지가 중요한 만큼 타인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한 이상 근로자로 보도록 정의규정을 바꾸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