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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언약장로교회 유승원 목사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6-30 22:38

시카고 언약장로교회 담임 유승원 목사.(사진제공=언약장로교회)


<시 32:1-11>

1. 하나님 보고 싶으지요? 
성경에서 하나님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아니 사실은 형체가 없으시니 그저 임재를 체험한 것인데, 반응은? 

‘신난다’가 아니라 ‘망했다’였습니다. 성전에 높이 들려 보좌에 앉아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 순간 이사야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입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뜻밖인 것 같지만 하나님을 대면하면 저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죄를 갖고는 하나님을 대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죄는 도무지 섞일 수가 없습니다. 어부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물고기 포획을 경험한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서 보인 조건반사적 행위도 똑같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눅 5:8). 

이것은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였습니다. Yes! 하며, 바로 이거야 하는 복권 당첨의 기쁨, 성공과 돈벌이와 기분 좋은 환호가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자기가 그 앞에 설 수 없음을 절실하게 느낀 것입니다. 주님, 저 감당이 안 됩니다. 제발 떠나 주세요. 저도 그럴 것 같아요.

2. 이유? 
우리 하나님, 성서의 하나님은 철저하게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어떤 부정한 것이나 죄 된 것이 하나님과 섞일 수 없습니다.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찬송가 9장). 죄인의 상태로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서 죄가 있으면 죄를 용납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 가진 존재를 거부하거나 죄 가진 존재를 파괴하실 것입니다. 죄와 하나님은 상극일 뿐 아니라 본질 상 도저히 양립할 수 없습니다. 

‘거룩하심’은 죄가 없음의 상태이기 때문에 빛이 들어가는 순간에 어둠 자체가 파괴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자동적으로 죄를 격파합니다.

3. 그래서 우리에게 최 우선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죄 문제의 해결입니다. 

영의 눈이 뜨이지 않은 사람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영의 눈이 열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보는 사람은 이것이 가장 절실하고 긴급한 일임을 깨닫습니다. 

마가복음 2장에서 중풍병자가 지붕을 통해 내려왔을 때, 그 메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가상히 여겨 예수님께서 그 중풍병자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존재를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을 먼저 이루셨습니다.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5). 하나님 앞에서는 중풍병을 고치는 것보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죄를 그대로 용납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냥 대충 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면 굳이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그 흉측한 고통을 겪으시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필요까지 없었겠지요. 죄의 삯은 필연적으로 사망이기 때문입니다(롬 6:23).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대속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4. 그래서 우리 안에 죄가 있으면 일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에 불편함이 있습니다. 아니 고통이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에 죄를 품고 있으면 성령께서 근심을 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괴롭습니다. 가시방석과 같습니다. 그렇게 죄를 품고 있을 때의 고통을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3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셀라”(시 32:3-4). 

시편 기자 다윗의 고통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죄는 그리스도인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5.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될까요?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시 32:5).

첫째, 자복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둘째, 아뢰었습니다. 별로 대단하게 한 것 없어 보입니다. 즉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씀드린 것입니다. 정직했습니다. 그리고 입을 열어 인정했습니다. 

그랬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다 합니다. 고백의 신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분 앞에서 정직한 것입니다. 이리 저리 변명하고, 합리화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자기만 괴롭습니다. 다윗에게도 인정하지 않고 회피하는 시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몸과 마음의 온 존재가 바짝바짝 말라갔다고 합니다(4절). 

“8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8-9).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저는 이 말씀이 참 기가 막힙니다. 하나님께서 토론하자고 하십니다. 무엇에 대해? 죄 용서에 대해.

용서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용서의 확신을 갖게 하기 위해 토론하자 하십니다. 보통 토론하자고 할 때, 논쟁하려 할 때는 잘잘못을 지독하게 따지며 팔을 걷어붙일 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장하기 위해서인가요?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도무지 빨아낼 수 없게끔 옷을 붉게 물들여 희망이 없는 것 같을지라도 눈 같이 희게 될 것이랍니다. 진홍 같이 붉어서 도저히 빼낼 수 없을 것 같이 선명하다 하더라도 양털 같이 희어진답니다. 불가능한 것 같은데 용서하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따져가며 토론하고자 하시는 말씀은 용서의 확신을 위한 은혜의 폭탄입니다.

6. 자백과 회개 후 평화가 찾아옵니다. 
이 평화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미처 모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자리를 찾으시고 내 마음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었을 때 평화와 기쁨이 넘칩니다. 이것이야 말로 복 중의 복이지요. 행복입니다. 그래서 여기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1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1-2).

로마서 4:7-8에서 사도 바울이 이 시편 말씀을 그대로 인용 언급하며, 예전 개역성경에서는, ‘일 한 것이 없이도 의롭다 여김을 받은 사람의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정직하게 죄를 고백하여 하나님과 막힘이 없는 사람을 주께서 무어라 하십니까? 

‘마음에 간사가 없다’(2절). ‘경건한 자’(6절 - 경건한 자는 죄를 잘 고백하여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사람), ‘의인’(11절), '마음이 정직한 사람‘(11)이라 부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투명한 관계를 가지는 사람이 진정한 인격자라는 것입니다.

7.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아무리 반복하여 민망하더라도 역시 죄를 품고 있기 보다는 자백을 해야 합니다. 정결을 유지하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죄를 짓지 않는 것 이상으로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은, 죄를 짓지 않으면 더 좋으나 실패했을 때도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나와 하나님 사이에 막힌 것이 없이 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우리의 순결은 ‘내가 잘난 순결’이 아니라 ‘용서받음으로 이루어지는 순결’입니다. 

행복하십시오. 순결하십시오. 마음이 깨끗하여 하나님을 알현하는 복을 누리십시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이렇게 되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께서 저를 들으십니다. 

죄 사함 받고 나서 경건한 자가 되니, “6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7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셀라”(시 32:6-7).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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