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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생명교회 조태성 목사 '기도해야 쓰임 받는다!'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9-23 03:17

영목신학원 조태성 교수.(사진제공=새생명교회)


* 기도해야 쓰임 받는다!
    
1.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막11:17)
 
스코틀랜드 출신의 던컨 캠벨 목사님은 이렇게 외치셨다.(뉴헤브리디스 부흥을 체험하시고 쓰임 받으셨다)
 
“나는 천국에서는 유명하고 지옥에는 두려움을 주는 사람이길 원한다!”
 
2. 
나 역시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여러분도 그러한 소원을 가지고 계시리라. 그러려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공평하게 사랑하신다. 교파나 교단을 초월해서 모든 교회를 공평하게 사랑하신다. 그러나 사랑받는 것과 쓰임 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주위를 둘러보라. 쓰임 받는 사람이 있고 쓰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쓰임 받는 공동체가 있고 쓰임 받지 못하는 공동체가 있다. 

3. 
오해하지는 말자. 쓰임 받는다는 의미는 목회자가 유명하거나 교회 사역 규모가 큰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성도 숫자가 많은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작고 성도님들이 다섯 분이라 하더라도 놀랍게 쓰임 받을 수 있다. 예수님은 두세 사람  모인 곳에 함께 계시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중요한 것은 영향력과 생명력이다. 규모와 상관없이 주어진 여건에서 예수님의 생명을 누리고 나누는 삶과 사역이 가능한지 여부다. 우리 두세 사람이 모인 교회를 통해서도 성령님의 나타나심으로 예수님을 보여줄 수 있는지의 여부다. 예수님의 풍성하신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지의 여부다. 
 
4. 
오순절 성령님 강림하신 이후 기독교 역사 가운데 부흥의 역사를 살펴보라. 쓰임 받는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의 기도하는 사람들로 출발했다. 쓰임 받는 공동체들은 언제나 기도하는 기도모임이나 공동체다. 규모와 상관없이 쓰임 받는 교회들은 바로 기도하는 교회다.
 
왜냐하면 기도해야 쓰임 받을 만큼의 힘을 얻기 때문이다. 힘이라는 것은 바로 자녀요 증인의 삶과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권세와 권능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는데 사랑받고 있는 만큼 기도로 힘을 얻어야 쓰임 받는다.
 
5. 
일산에 일터사역을 하는 중소기업이 있다. 판촉물 업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선교와 문화선교, 일터선교를 향한 놀라운 비전을 가지고 있는 회사다. 실제로 이 모든 영역에서 선교와 전도를 실천하고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 

주중에 직원들끼리 모여서 기도모임을 진행한다. 무엇보다 여기에서는 매일 아침 직원 예배를 드린다. 일주일에 2일 정도는 외부 강사를 섭외하여 예배를 드리는데 나도 몇 번 초청을 받아 다녀왔다.
 
6.
하루는 직원 예배를 드릴 때 성령님께서 직원들로 하여금 십자가의 은혜를 충만하게 부어주신다. 은혜가 얼마나 크신지 감동과 감격으로 반응하게 역사하셨다.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직원들이 흐느끼고 울고 있었다. 

설교 후 통성기도를 할 때는 중단할 수 없을 만큼 흐느껴 울면서 감사와 회개의 외침으로 가득했다. 기도를 중단시킬 수가 없었다. 계속 기도했다. 그러나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기에 계속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없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간신히 기도를 멈출 수 있었다.
 
7. 
기도는 멈췄지만 대표님께서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으셨는지 예배를 중단하셨다. 대표님 방을 내주셔서 한 명 한 명 나와 상담을 하고 안수기도를 받도록 인도해주신다. 

결국 오전 업무는 쉬게 되었으며 아침 8시 30분에 시작 된 예배는 오후 1시가 넘어서 마치게 되었다. 이러한 은혜를 함께 받고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오직 십자가의 은혜와 그 은혜에 반응하여 하나님을 더욱 찾고 갈망하며 부르짖어 기도하였기 때문이다.
 
8.
정치인들이 자주 찾는 유명한 무당이 있다. 자서전 같은 책을 썼는데 많이 알려졌다. 그 역시 교회를 열심히 찾아 다녔다. 신 내림을 받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당시에 그가 찾아 갔던 교회들에서는 도움주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나는 박수무당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절에도 가보고 교회도 가봤습니다. 온갖 방법을 다 찾아 다녔지만 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무당이 되었습니다.”
 
9.
21세기에도 이런 무당 같은 사람들이 많다. 꽤 많다. 도대체 그들은 왜 교회를 떠났는가? 당시에 그 사람들이 찾아갔던 교회에서 적어도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지 못해서다. 도움받고자 찾아 간 교회에서 주님을 만나지 못해서다. 

성령님의 바람과 같은 역사하심을 체험하지 못해서다. 불과 같은 뜨거움을 체험하지 못해서다. 폭포수 같은 성령님의 영적 생명력이 그들에게 흘러들어가지 못해서다. 왜 교회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느끼지 못한 걸까?
 
10. 
문제는 오늘날도 똑같은 일들이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오늘날 그런 사람들이 도움 받고자 찾아 온 교회에서 아무것도 못 느낄까? 왜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체험 못하나?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기도하지 않아서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찌라...(겔 36:37)

이처럼 기도해야 성령님의 충만하신 임재와 응답의 역사가 일어난다. 할렐루야~!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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