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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우리가꿈꾸는교회 김병완 담임목사.(사진제공=우리가꿈꾸는교회) |
1. 회피자
하나님은 행위대로 심판하신다(렘 21:14). 기독교의 진리다. ‘행위’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데레크’는 ‘길’이라는 뜻이다. 교차로에서 선택하는 길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듯, 우리 행위의 누적이 도착지를 결정한다. 성경의 한 저자는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게 된다(히 4:13)”고 말한다.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있는 것이 없다.
심각한 문제는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 제외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폭로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 다윗도 포함된다. 1절에 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그리워한다. 그를 3년이나 보지 못했다. 그가 자기 누이를 범한 이복형제 암논(다윗의 또 다른 아들)을 죽이고 달아났기 때문이다. 모세의 법에 살인자는 반드시 죽여야 했다(민 35:31). 그럼에도 그를 처형하지 못한 것은 그가 아들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애초에 원인 제공자가 다윗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왕이 되고 전쟁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자 자신의 충성스러운 장군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기 위해 그를 사지로 몰아넣어 죽게 한다. 하나님은 그의 집안에 살육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삼하 12:10). 그래서였을까? 자기 아들 암논이 이복누이 다말을 범했을 때도 그는 화가 났지만 나무라지 않는다(삼하 13:21). 압살롬이 암논에게 복수했을 때도 그저 자기 옷을 찢을 뿐이었다(삼하 13:31). 다윗은 아버지로서 불구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들을 처형하면 무정한 아버지가 되고, 그를 사면하면 불의한 왕이 된다. 다윗은 그보다 아들이 숨어버린 것이 더 나았다.
2. 간청자
그런데 그 앞에 간청하는 여인이 나타났다. 요압 장군은 다윗이 아들 압살롬을 그리워하는 것을 알았다(1절). 뿐만 아니라 그를 예루살렘에 데려오는 것이 후계자 준비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TCENB).
예루살렘과 16km 떨어진 작은 마을 드고아. 여기서 사람을 찾아 이야기를 꾸민다면 다윗은 모를 것이다(2-3절). 여인은 요압 장군이 꾸며준 이야기로 다윗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들이 서로 싸워서 한 쪽이 죽었는데 친척들이 살해한 아들을 처형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히브리법에 옳다. 또한 두 아들이 죽어 상속자가 없을 경우 상속은 친척들에게 넘어간다. 여인은 아직 살아있는 아들과 남편의 재산을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고 이를 승낙받는다(5-10절).
문제는 이 모든 이야기가 다윗과 압살롬을 빗댄 이야기였다는 것이다(12-13절). 그녀는 다윗이 이야기 속 친척들 같이 되었다고 진의를 드러낸다(13b절). 다윗은 어느새 후계자를 끊어버림으로써 나라의 이익에 반하고 있었던 것이다(13a절).
3. 대속자
예수님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에게 화해의 손을 내미신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고 말한다. 여인은 다윗을 설득하기 위해서 현명하게 하나님의 자비를 언급한다(14절). “우리는 필경 죽지만 … 하나님은 방책을 베푸사 …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시나이다.”
당시 여인도 몰랐던 하나님의 궁극적인 방책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다. 우리를 행위대로 심판하시면서도 버린 자가 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대신 십자가에 못박았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비와 정의 모두를 만족시키신다.
하지만 다윗은 자비만을 택함으로 정의를 외면했고, 이는 그의 가족과 나라에 더 큰 불행을 낳았다. 만약 다윗이 이 문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면 어땠을까? 두 부자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비를 구하고 받게 될 용서와 겸손한 다짐을 백성 앞에 고백했다면 이스라엘의 미래는 어땠을까?
당신이 지금 하나님께 간청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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