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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철학자, 그 깊은 영혼의 고백

[인천=아시아뉴스통신] 조은애기자 송고시간 2026-06-10 19:23

전호준 신부, 김현태 루카 신부 시집 '양지와 음지의 선율' 출판기념회에서 존경과 사랑 전해
[아시아뉴스통신=조은애 기자]
지난 9일 김현태 루카 신부(왼쪽)의 시집 '양지와 음지의 선율' 출판기념회에서 기념미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전호준 스테파노 신부(오른쪽)가 강론을 들으며 웃음을 짓고 있다./아시아뉴스통신=조은애 기자

“제가 정말 사랑하는 주임 신부님이 한 분 계십니다.”

지난 9일 오후 가톨릭 인천교구 인천 중구 답동성당에서 열린 김현태 루카 신부의 시집 '양지와 음지의 선율' 출판기념회에서 전호준 스테파노 신부(부평3동)는 이 한마디로 오랜 존경과 애정을 담아낸 특별한 헌사를 시작했다.

전 신부는 김현태 신부를 “백발의 멋진 철학자”라고 소개했다. 김 신부는 사제품을 받은 이듬해 곧바로 로마로 유학을 떠나 안토니아눔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평생 학문과 사상 연구에 헌신해 온 인물이다.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매년 꾸준히 논문을 발표했으며 수십 권의 철학서와 번역서를 집필해 한국 가톨릭 철학계의 중요한 학문적 자산을 남겼다.
 
지난 9일 김현태 루카 신부(왼쪽 두번째)의 시집 '양지와 음지의 선율' 출판기념회에서 축하식이 열리고 있다./아시아뉴스통신=조은애 기자

그러나 전호준 신부가 기억하는 김현태 신부는 단지 학문적 업적만으로 설명되는 인물이 아니었다.

청수성당에서 보좌신부로 사목하던 시절 김현태 신부를 주임신부로 모셨던 전 신부는 “신부님의 지지와 격려 덕분에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듯 행복하게 사목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엄격한 원칙과 뜨거운 신앙심을 지닌 지도자였지만, 후배 사제들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따뜻한 스승이었다는 것이다.
 
지난 9일 김현태 루카 신부(왼쪽)의 시집 '양지와 음지의 선율' 출판기념회에서 기념미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전호준 스테파노 신부(오른쪽 세번째)가 이석재 토마스아퀴나스 신부의 강론을 듣고 있다./아시아뉴스통신=조은애 기자

김현태 신부의 삶은 철저한 신앙과 절제의 실천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전 신부에 따르면 김 신부는 세제가 아무리 친환경 제품이라 하더라도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고 생각해 설거지조차 거의 물로만 했을 정도로 자연과 생명을 소중히 여겼다.

그러한 삶의 태도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과도 깊이 연결돼 있다.

전 신부는 김 신부가 생전에 들려준 가족 이야기를 소개하며 “신부님의 아버님은 성인과도 같은 분이었다”고 말했다. 일본에 거주하던 시절에도 성당 외에는 거의 외출하지 않았고, 방문을 열어보면 늘 묵주기도를 바치고 계셨으며 자녀들에게도 신앙생활을 엄격히 가르쳤던 분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한 김현태 신부는 평생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삶으로 증언해 왔다.

그는 “하느님께 드리는 것은 언제나 최고의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사목하던 성당마다 성합과 성작, 십자가, 경본틀, 향로 등 전례용품을 가장 아름답고 품격 있는 것으로 갖추도록 노력했다. 만수1동성당 주임신부 시절에는 성당 외벽과 내부를 웅장한 성화들로 채워 넣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성화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많은 신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현재 은퇴 후에도 김 신부는 신자들을 위한 철학 강의를 이어가고 있으며, 함께 생활하는 다른 사제들과 함께 성경과 신학 강좌를 진행하면서 교우들의 신앙 성장을 돕고 있다.

그러나 이날 출판기념회에서 가장 큰 울림을 준 것은 학문적 성취도, 화려한 사목 경력도 아니었다.

평생 어려운 철학서와 번역서만 집필해 온 김현태 신부가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시집 《양지와 음지의 선율》이 보여준 한 인간의 깊은 내면이었다.

전호준 신부는 시집을 선물 받아 공원에서 한 시간 동안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지난 9일 김현태 루카 신부(왼쪽)의 시집 '양지와 음지의 선율' 출판기념회에서 기념미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전호준 스테파노 신부(오른쪽)가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아시아뉴스통신=조은애 기자

“평생을 교회의 영적인 아버지로, 신적인 아빠로 살아오신 분이 시 속에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자 육신의 아버지의 아들로서 ‘아빠의 품이 그립다’, ‘아빠에게 위로받고 싶다’고 고백하고 계셨습니다.”

평생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가르침을 주었던 백발의 원로 사제가 사실은 누구보다 아버지의 품을 그리워하는 한 사람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깊이 울렸다.

전 신부는 “지성적으로나 신학적으로는 누구보다 날카로운 최고의 철학자이신 신부님이 마음속으로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연약한 아들이라는 것을 보았을 때, 제가 신부님의 아버지가 되어 꼭 안아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학문의 정점에 서 있었던 철학자, 평생 교회를 위해 헌신한 사제, 수많은 신자들의 영적 아버지였던 김현태 신부.

그리고 이번 시집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또 다른 한 사람,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사랑을 갈망하는 순수한 아들의 모습은 참석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겼다.

'양지와 음지의 선율'은 그렇게 한 철학자의 지성과 한 사제의 신앙, 그리고 한 인간의 가장 진솔한 영혼이 만나 빚어낸 아름다운 삶의 고백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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