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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일희 계명대 총장.(사진제공=계명대) |
신 총장은 지난1966년 미국 프리스턴대학에서 독일문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같은 해 9월 뉴욕시립대학 퀸즈컬리지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교육계에 몸을 담은 지 올해로 꼭 50년을 맞았다.
21일 계명대에 따르면 신 총장의 교육 희년을 맞아 그 동안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업적을 엿볼 수 있는 기념전시회가 22일부터 다음달 28일까지 행소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린다.
'행소 신일희 박사 교육 희년 기념전'에는 그의 중고교 시절 사진과 노트, 미국 유학 시절의 필기 노트 등을 비롯해 저서와 회고록, 각종 훈장 등 100여 점의 자료들이 전시된다.
전시회에 앞서 오후 5시 성서캠퍼스 의양관 운제실에서 기념행사도 열린다.
또 다음달 24일부터 6월11일까지 계명대 대명캠퍼스 극재미술관에서 미술대학 교수 및 제자들이 기증한 60여 점의 작품으로 미술 전시회가 열리고, 제1회 행소포럼과 기념도서 출판기념회 등 교육 희년을 축하하기 위한 행사가 이어진다.
이 모든 행사는 신 총장의 제자들과 후학들이 그의 업적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한편 신 총장은 1939년 대구에서 태어나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캔트학교로 유학길에 올랐다.
단돈 100달러만 갖고 한 달 동안 생선운반선을 타고 일본을 거쳐 미국에 도착했다.
이후 지금의 신 총장 모습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려운 환경에서 유학생활을 보냈다.
농장의 잡일부터 식당의 접시닦이, 골프장 캐디, 공사장 잡부 등으로 직접 생활비와 학비를 마련하며, 아무런 도움없이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해결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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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명대 행소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행소 신일희 박사 교육 희년 기념전'을 찾은 학생들이 전시된 자료들을 관람하고 있다.(사진제공=계명대) |
그러면서도 학업에 매진하며, 캔트고등학교를 최우수 졸업생으로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 프리스턴, 트리니티 대학에 지원해 모두 합격했다.
그의 선택은 장학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었던 트리니티 대학이었다.
그곳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한 후 프리스턴 대학원에서 독일문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때 나이가 27세였다.
지난 1966년 미국 뉴욕시립대학 퀸즈컬리지 조교수를 시작으로 독일 킬대학 객원조교수, 연세대 독어독문과 부교수, 계명대 독어독문과 교수를 거쳐 계명대 총장을 역임하며 올해로 교육계에 몸 담은 지 50년을 맞이하게 됐다.
15살 소년시절부터 어려운 환경 속에서 혼자 힘으로 유학생활을 보내며, 몸에 배어있는 근검절약과 청교도정신, 개척정신은 교육자로서의 그의 생활을 엿 볼 수 있다.
특히 계명대 총장을 역임하며, 엄격한 재정운영과 철저한 절약정신의 실천, 그리고 외부 기부금 등으로 계명대의 새로운 시대를 연 성서캠퍼스 조성의 주도자 역할을 맡아왔다.
그는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하고, 국외 출장 시 저렴한 숙소를 이용하고 남은 출장비는 학교에 반납하는 등 계명대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그의 공로와 업적을 모두 나열하기 힘들다.
또한 스웨덴 명예영사, 폴란드 명예영사 및 명예총영사, 중국 공자아카데미 이사를 비롯해 지난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와 2011년 대구육상선수권대회의 선수촌장 등 대외적인 활동을 활발히 가졌다.
특히 사단법인 대구.경북국제교류협의회 공동의장을 맡아 대구.경북이 민간외교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 같은 업적으로 폴란드 대십자훈장(2000), 폴란드 예술훈장(2008), 5.16민족상(2007),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2012) 등 국내외의 많은 훈장과 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지난 2001년에는 미국 프리스턴대학 대학원 100주년 기념 '저명 동문 100인'에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