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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장군 후손 카멘 남 교수 탈북 여동생 극적 상봉

[경기=아시아뉴스통신] 강경숙기자 송고시간 2016-08-31 14:30

분단 이산 고통 2만1000 리를 넘어 넘어

남경필 지사 적극 제안 성사된 한국 방문
29일 오후 남이장군의 19대 후손이자 남승범 북한 김책공업종합대학교 전 교수의 아들인 카멘 남(Kamen Nam. 59) 불가리아 소피아국립대 교수와 이복동생 남율주(가명)씨가 공동기자회견을 하던 중 서로 포옹을 하고 있다.(사진제공=경기도청)

오빠와 여동생이 반 세기 이상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이산 가족으로 만난다.

생존조차도 모르고 있다가 태어나 처음으로 만나는 남매는 그저 눈물 뿐이다.

부친 부재나 탈북 등의 고통의 시간이 먼 뒤안 길이 되는 듯 하다. 분단과 이산의 고통이 2만1000 리(8200 여 킬로미터)를 넘어 넘어 1센티미터로 가까워졌다. 마음은 더욱 밀착이다. 애틋하고 진한 감동이 퍼지는 순간이다.

남이 장군의 19대 후손이자 남승범 북한 김책공업종합대학교 전 교수의 아들인 카멘 남(Kamen Nam·59) 불가리아 소피아국립대 교수(지리학.국가안보학)가 29일 오전 인천공항에서 이복 여동생인 남율주(가명·49) 씨와 극적 상봉, 냉전의 분단과 상처가 민족의 고통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최근 남북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며 통일부에서도 "올해 추석맞이 상봉행사 추진은 어렵다”고 해 올해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사실상 물 건너간 시점에서 이번 두 남매의 만남은 남경필 도지사를 비롯한 경기도 관계자들의 한 합심작품으로 기록되고 있다.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카멘 남 교수는 "이 순간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행복’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한국에서 동생을 만나게 도와주신 남경필 도지사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밝혔다.

여동생 남 씨 또한 “오빠가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설렘에 한 달간 잠을 못 잤다. 너무 멋있게 버텨준 오빠를 보니 말은 안 통하지만 마음이 느껴져 눈물이 난다"며 흐느꼈다.

카멘 남 교수의 여동생 남 씨는 고 남승범 씨가 재혼해 낳은 1남 2녀 중 둘째로 1998년 탈북 후, 2007년 남한에 정착했다.

남 씨는 아버지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다가 카멘 남 교수의 존재를 알게 됐다.

남 씨는 “북한에 있었으면 못 만났을텐데 한국에 와서 만나게 돼 너무 기쁘다”며 “오빠와 함께하는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고 전했다.

사실 남 교수의 이번 방문은 지난 5월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불가리아 대사관을 방문했을 때 대사관의 한 관계자로부터 이산가족 분단의 애환을 간직한 카멘 남 교수의 가족사를 듣고 한국 방문을 적극적으로 제안해 이루어졌다.

카멘 남 교수는 “존함이 남승범인 저희 아버지는 불가리아에서 북한으로 가셨고 만날 수가 없어 항상 그리웠다. 3년 전 한국에 여동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정말 기뻤다”며 “오늘은 꿈이 실현된 날이다. 아내와 함께 한국에 초청된 이날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기쁨의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덧붙였다.

'제315회 21세기 희망의 경기포럼’에 강사로도 초청된 카멘 남 교수는 30일 '지리학자로서 본 불가리아 발칸 비경과 한국으로의 여정’에 대한 강의를 통해 한국인로서 발칸 산맥을 누비는 지리학과 교수의 이야기와 냉전과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자신의 인생 여정 이야기 등을 소개해 참석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30일 오전 경기도청 도지사 집무실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카멘 남(Kamen Nam, 59) 불가리아 소피아 국립대 교수와 함께 카멘 남 교수가 선물한 풍경화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셀프카메라 촬영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을 왼쪽 첫번째에 있는 여동생 남율주(가명.49) 씨가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다.(사진제공=경기도청)

이시애의 난과 건주위 여진족 정벌 등에서 활약한 남이 장군은 조선의 영웅으로 세조의 총애를 받은 무신이며, 카멘 남 교수는 1989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62세로 숨진 고(故) 남승범 김책공업종합대학 교수와 불가리아인 예카테리나 소피아국립대 교수 사이에서 태어난 외아들이다.

카멘 남 교수의 아버지 남승범 교수는 한국전쟁 직후 불가리아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당시 북한은 부상 당한 군인들을 요양과 교육 목적으로 여러 동유럽 공산국가들로 보냈는데, 남 교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남승범 교수는 이곳에서 5년 동안 거주하면서 불가리아 정부 장학금으로 소피아대학교에서 공부를 했으며, 부상 치료를 위해 다녔던 재활센터에서 예카테리나 씨와 만나 카멘 남 교수를 낳았다.

카멘 남 교수가 2살이 되던 1959년 남승범 교수는 귀국 명령이 떨어져 평양으로 복귀하게 됐으며, 남 교수의 가족은 졸지에 이산가족이 됐다.

남편을 잃은 예카테리나 씨는 북한으로 가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등 부단히 노력한 끝에 북한 주재 불가리아 대사관 비서직에 선발되어 북한을 방문해 남편과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됐다.

당시 카멘 남 교수는 너무 어려 불가리아 외할머니 댁에 맡겨졌었다.

카멘 남 교수는 “아버지가 북한으로 가시고 어머니와 둘만 남아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아버지를 잊지 않고 있다”며“아버지는 전문가이셨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셨으며 저에게 있어서 공학적인 마인드와 소양을 물려주셨다”고 말했다.

어렵게 다시 만나게 된 남승범 교수 부부의 북한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부인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던 남승범 교수는 대학교수 자리까지 빼앗기는 등 고초를 겪게 됐다.

남편의 고통을 볼 수 없었던 예카테리나 씨는 2년 만에 홀로 불가리아 복귀를 결정했다.

불가리아로 돌아온 예카테리나 씨는 소피아대학 지리학과 교수가 됐고 북한 체류기간 동안 수집한 북한 지리에 관한 자료를 정리해 '코리아’란 제목의 책자를 집필하기도 했다.

이어 카멘 남 교수는 “최근 희망사항은 한국에 대해서 쓰고 있는 책을 끝내는 것이다. 한국의 여러 단체에서 이런 저의 한국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며“아버지께서 남 씨 성을 주셨고 자부심을 가지게 해주셨기 때문에 남 씨 일가 역사에 관해서도 넣고 싶다”고 덧붙였다.

다음달 3일 불가리아로 돌아가는 카멘 남 교수는 방한 기간 동안 DMZ, 임진각, 도라산 전망대, 판교테크노밸리, 화성행궁, 경복궁 등을 방문할 계획이다.

이번 방문 일정을 총괄한 김규식 외교정책과장은 " 이산 가족 찾기 통로가 막혀 있는 시점에서 2만1000리를 넘어 극적으로 이뤄진 이번 상봉은 참으로 감동적이면서도 뿌듯한 순간으로 마치 도지사님을 비롯해 경기도 모든 관계자들이 만들어 낸 하나의 영화같은 작품 같았다"는 소감을 전했다.

덧붙여 "지켜보는 이들도 내내 먹먹하고 애잔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는 현장 분위기를 전하며 계속적인 관심과 왕래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남이 장군은 천지를 바라보며 북받치는 뜨거운 가슴으로 이런 뜻의 한시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닳게 하고,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없애도다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치 못하면 후세에 그 누가 대장부라 일컫겠는가"

세조 사망 후 28세에 역모로 처형되어 짧고 굵게 살다간 한 대장부의 기개를 그대로 전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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