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세상의 등불, 영원한 횃불 '김하종' (95세) (2부)
■ 시신 수습조차 죄가 되던 피눈물의 세월
1948년부터 1950년 사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민보단에 의해 내남면 일대는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음력 6월 그믐 전후부터 음력 8월 전후 무렵까지 명계리 바탕골에서 자행된 참상은 인간의 잔혹성이 어디까지 치달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의 결정체였다.
살아남은 자들은 희생자들을 슬퍼할 권리조차 빼앗겼다. 김하종 회장의 선친(고 김봉수)의 억울한 죽음은 그 시대의 끔찍함을 뼈저리게 대변한다. 학살 직후, 친족들이 몰살당한 줄도 모르고 이웃들과 함께 시신을 수습하러 바탕골로 향했던 선친은, 총에 맞아 핏빛으로 물든 희생자의 옷을 벗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혀 예를 갖춰 매장하려 했다.
그러나 이를 감시하던 민보단원은 "그렇게 하면 매장이 늦어진다"며 오히려 시신을 수습하던 선친을 몽둥이로 무자비하게 내리쳐 움직일 수조차 없는 중상을 입혔다. 일행의 지게에 실려 4km 떨어진 홈실 집으로 힘겹게 돌아왔으나, 약 한 첩 구하지 못하는 절망 속에서 가족들은 사람 똥을 구워 먹이는 처절한 몸부림을 쳐야 했다. 끝내 선친은 9일 만에 한 많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기자의 삼촌(고 손영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탕골 참상 소식을 듣고 가족을 살리기 위해 달려갔던 이들조차 이미 "손영한은 2시간 전에 죽였다 가도 소용 없다" "지금 가면 너희도 같이 죽는다" 는 서늘한 경고에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시신을 수습하려다가는 '같은 패(용공분자)'로 몰려 일가족이 몰살당할 수 있다는 공포정치 속에, 희생자들은 제대로 된 무덤조차 없이 동네 사람들이 밭에 합동 매장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살인귀는 '금배지'를 달고 국회로 갔다
유족들이 피눈물을 삼키며 숨죽여 지낼 때, 학살의 주범인 이협우와 민보단원들은 거칠 것이 없었다. 공비 토벌에 협조했다는 명분으로 권력을 쥔 이협우는 내남면 일대의 재물과 토지를 무자비하게 강탈하며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그의 횡포를 견디다 못한 면민들은 결국 1950년 5.30 선거에서 기막힌 선택을 하고 만다. "차라리 이협우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경주를 떠나게 하는 것이 면민의 희생을 줄이는 최선책"이라는 눈물겨운 자구책으로 학살의 주범을 제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시킨 것이다.
양민의 피를 밟고 선 이협우는 이후 3, 4대를 거쳐 내리 3선 의원(자유당)을 지냈다. 국회 임기 내내 무지함으로 일관하며 "점심식사를 하고 속개합시다"라는 발언밖에 한 것이 없다는 조롱을 받으면서도 그는 금배지를 달고 호의호식했다. 유족들은 이 기가 막힌 시대의 모순과 불의 앞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해야 했다.
■ 77년의 침묵을 깬 바탕골의 스산한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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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차 없던 야만의 시대였다." 77년 전 기자의 삼촌(고 손영한)과 무고한 이웃들이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하게 희생된 명계리 바탕골 산비탈 현장. 지난 13일 현장 취재에서 김여헌 옹이 가리킨 핏빛 역사의 현장이 긴 침묵 속에 잠겨 있다./사진=아시아뉴스통신 손주석 기자 |
본지는 지난 13일(일) 오후, 그 참혹했던 역사의 현장인 명계리 바탕골을 직접 찾았다. 무려 77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바탕골 산비탈에는 억울한 원혼들의 울음 같은 스산한 가을바람만이 맴돌고 있었다.
이날 현장 취재에 동행한 역사의 산증인 김여헌 옹(90세)은 2시간여에 걸쳐 그날의 비극을 생생히 증언했다. 김 옹은 떨리는 손으로 당시 참상이 벌어졌던 사살 현장 네 곳을 일일이 지목했다. △첫 번째 재실 △두 번째 회관 앞 손씨 집 △세 번째 기자의 삼촌(고 손영한)과 김 회장의 선친이 억울하게 희생된 산비탈 현장 △네 번째 개천 건너 앞산 집이었다.
김 옹은 77년 전 사살 현장들을 묵묵히 바라보며 "법조차 없던 야만의 시대였다"고 깊이 한탄했다.
무지한 살인귀가 권력을 쥐고, 죄 없는 양민들이 밭고랑에 버려지던 그 캄캄한 시대. 거짓과 불의에 맞서 진정한 명예 회복을 이뤄내기 위한 김하종 회장의 길고 외로운 투쟁은 바로 이 피 묻은 바탕골에서 잉태되고 있었다.
(3부 '4,000명의 통곡, 침묵을 깬 경주지구 양민피학살자 유족회의 결성'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