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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백남기 사망 41일만에 장례…6일 광주 5·18 묘역에 안장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최영훈기자 송고시간 2016-11-05 18:03

명동성당서 장례미사…광화문광장서 시민과 정치인 등 2만여명 참석한 대규모 영결식 치러
지난해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다 숨진 고(故) 백남기씨 장례가 5일 치러졌다. 이날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영결식 가운데 백씨 유족들이 슬픔에 잠겨 있다./아시아뉴스통신=최영훈 기자

지난해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다 숨진 고(故) 백남기씨 장례가 5일 치러졌다.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지 358일, 사망한 지 41일 만이다.


백씨 유족과 백남기투쟁본부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전 8시 백씨가 안치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천주교 수도자들과 유족 등 일부만 참석한 가운데 발인을 진행했다. 
 

지난해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다 숨진 고(故) 백남기씨 장례가 5일 치러졌다. 이날 오전 9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의 집전으로 백씨의 장례미사가 치러졌다.(사진제공=백남기투쟁본부)


이어 백씨의 시신은 운구차로 옮겨져 장례미사가 열리는 서울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한 미사에는 유족과 시민들, 정치권 인사 등 1200여명이 참석해 자리를 채웠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강론에서 “정직하게 땀 흘려 기른 우리 먹거리의 정당한 대가를 바라는 외침이 살수 대포에 참혹하게 죽어야 할 정도로 부당한 요구였나”라며 “책임있는 분이 책임지고 사태를 해결해 달라”고 말했다.


장례미사에서 백씨의 첫째딸인 백도라지씨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이곳 명동성당에서 ‘임마누엘’이라는 세례명을 받았다”며 "장례미사도 여기서 치르게 돼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매우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추기경님과 수녀님, 여러 많은 신도들께서 우리 아버지 가는 길을 같이 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장례미사 이후 백씨의 시신은 고인이 쓰러진 장소인 종로구청 사거리로 옮겨졌고, 이곳에서 노제가 치러졌다.


운구 행렬 과정에서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만장 80개가 뿌려지기도 했다.


종로구청 사거리에서 치러진 노제는 상임장례위원장인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대표 등의 추모사와 소리꾼 정유숙씨와 춤꾼 이삼헌씨의 추모공연 등으로 진행됐다.


이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유족과 시민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 야3당 대표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부겸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등 정치인을 비롯해 2만여명(경찰 추산 1만 1000명)이 참석했다.


추미애 더민주 대표는 추도사에서 “백남기 농민은 국민과 농촌의 익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선구자였다”며 “폭압적인 공권력은 사과조차 없고 헌정질서를 마비시키고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무도한 집권세력은 오히려 국가폭력을 비호하며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능욕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다 숨진 고(故) 백남기씨의 영결식이 5일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 "특검으로 백남기 선생의 사인을 밝히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고 말했다./아시아뉴스통신=최영훈 기자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다행히 국민들의 노력으로 부검영장 집행을 막아내고 이제 고인을 영면의 길로 떠나보내게 됐다”며 "특검으로 백남기 선생의 사인을 밝히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도라지씨는 “우리 가족과 투쟁본부는 책임자들이 처벌받고, 재발방지책이 포함된 적절한 사과를 받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하는 한편, “아빠 사랑해요”라고 마지막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후 고인이 된 백씨는 고향 전남 보성으로 옮겨지고, 다음날인 6일 보성과 광주 금남로에서 노제를 가진 뒤 광주 망월동 5·18 구 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故 백남기씨 빈소./아시아뉴스통신DB


故(고) 백남기씨는 1947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중앙대 행정학과에 입학, 재학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이로 인해 1980년 체포됐다가 이듬해 3.1절 특별사면된 뒤 고향인 보성으로 내려가 농업을 했다.


지난해 11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한 고인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뒤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의식 회복 없이 올해 9월 25일 숨을 거뒀다.


백씨 사망 이후 유족과 시민단체는 고인이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것이 명백하다며 책임자 처벌과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명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시신 부검이 필요하다며 영장을 청구했고, 유족과 협의 등 조건으로 발부된 부검영장을 강제 집행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한 달 가까이 장례가 미뤄졌다. 


결국 경찰과 검찰은 지난 9월 25일 영장집행 시한이 마감된 뒤 같은 달 28일 영장 재신청 포기 의사를 밝히면서 비로소 장례 절차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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