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28일 일요일
뉴스홈 정치
'문민정부의 수장' YS 서거… "그 빛나는 족적"

[서울=아시아뉴스통신] 특별취재팀 송고시간 2015-11-23 19:16

대한민국의 아침을 열어제낀 '민주화의 대부'
정통 바로세우고 부정부패 척결
 김영산 전 대통령 빈소 모습.(사진=사진공동취재단)

 '대한민국 민주화의 대부'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오전 12시21분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88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2년 제14대 대선에 당선돼 수십년을 이어온 군사정권 시대를 종식하고 진정한 의미의 민주화 시대를 열었다.

 그는 이 정부를 '문민정부'라 명명하고 '역사 바로세우기', '금융실명제' 등의 정책을 시행해 대한민국 정치를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을 "자유민주주의 투사"라며 존경을 표시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대한민국 제14대 '문민정부' 시절 업적을 되돌아봤다.

◆대한민국의 정통을 제시한 '역사 바로 세우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대한민국의 역사'였다.
 
 그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임시정부(임정)'에서 찾으려 했고, 1993년 8월 중국에 있는 임정 요인들의 유해를 되찾아 오는 일을 추진했다.
 
 그해 8월5일에는 국립묘지에 임정요인 묘소를 설치했고, 1993년 말부터는 조선총독부 철거 준비를 시작해 1996년 12월 완전 철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하나회'로 불리던 군내 사조직과 관련된 정치군인들을 모두 전역시키기도 했다.  
 하나회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들의 정치적 기반으로, 12.12 사태, 5.18광주민주화 운동 진압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정치군인 집단이었다.
 
 1995년 말에는 '5.18 관련 특별법'제정을 지시했고, 그해 12월21일 5.18특별법이 제정 광주사태로 기록됐던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항쟁'으로 공식 격상시켰다.
 
 또 1996년에는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구속기소해 법의 심판을 받게 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아시아뉴스통신 DB
 
◆각종 비리와 부패를 척결한 '금융실명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경제비리와 부패의 온상이었던 금융차명과 재산은닉 등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저축 장려를 위해 가명, 차명 또는 무기명에 의한 금융거래를 허용해왔는데, 이는 각종 금융비리 사건과 부정부패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 돼왔다.
 
 특히 1982년 장영자 사건 등이 발생하면서 금융실명제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지만 각종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시행되지 못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8월12일 오후 8시, 긴급 재정경제명령 제16호를 발동, 금융실명제 승인을 요청했다.
 
 일주일 뒤인 1993년 8월19일 국회는 본회의를 개최해 긴급재정경제명령을 통과시킴으로써 본격적으로 금융실명제가 실시됐다.
 
 금융실명제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정경유착 등 각종 부정부패를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 
 
 또 금융실명제의 실시로 '종합소득세제' 실시가 가능하게 됐고, 이로 인해 세수가 늘어나 국가재정확보에도 큰 도움이 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아시아뉴스통신 DB
 
◆'자주적 외교노선'을 굳게 견지한 김영삼 전 대통령
 
 김 전 대통령은 북한에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전파해 개방화를 유도하고자 했다.
 
 취임 초 '남북정상회담'을 약속했고, 남북 간의 화해 분위기가 지속됐지만 1994년 7월 김일성이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지는 못했지만 남북관계의 새지평을 열었다.
 
 1994년 10월에는 대한민국을 제외하고 미국과 북한이 제네바 합의가 이뤄져 김 전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 간의 갈등이 시작됐고, 이후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처리과정에서도 클린턴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또 일본의 정치인들이 식민지 지배 정당화와 독도영유권에 대한 발언들을 끊임없이 내놓자, 김 전 대통령은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강경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강경한 외교노선때문에 1997년 IMF사태가 발생했을 때 미국과 일본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지만, '자주적 외교노선'을 견지해 대한민국의 국격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다.


[ 저작권자 © 아시아뉴스통신.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제보전화 : 1644-3331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의견쓰기

댓글 작성을 위해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 시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