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 18일 목요일
뉴스홈 칼럼(기고)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109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홍근진기자 송고시간 2018-08-13 09:08

[기고]세계속의 우리 문화 정체성과 이름에 대한 단상
남북통일 기원 유라시아대륙 횡단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본지는 지난해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1년2개월 동안 16개국 1만6000km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고 중국과 북한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올 예정인 통일기원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씨의 기고문을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다.[편집자주]
 
산시성(陝西省) 딩벤현(定邊縣)서 Anbianzhen(安邊鎭)으로 가는 길을 달리고 있는 필자.(사진=장용)

중국인들은 웬만해서 중국말에 외래어를 섞어 쓰지 않는다. 중국에 들어와서 가장 큰 문제가 소통이었다.

섞어 쓰지 않으니 기본적으로 만국 공용어쯤으로 여겨지는 단어도 못 알아들어 아예 소통을 포기해버리다시피 했다.

내 여정을 설명하려고 네덜란드에서 출발하여 독일 체코를 거쳐.... 이렇게 이야기 해봐야 도무지 알아듣지를 못한다.

네덜란드는 하란(荷蘭), 독일은 덕국(德國), 오스트리아는 오지리(奧地利) 등으로 표기하니 처음부터 소통 불가이다.

지난번 우루무치를 지날 때 잠시 우렁각시 노릇을 해주었던 휘족 영어 선생님 도도를 만나서 같이 저녁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한 이후에 중국을 달리기 시작해서 3달 동안 현지인들하고 대화를 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힘들게 달리는 중에도 가끔 현지인들과 차를 마시든지 식사를 같이하면서 대화를 하는 시간은 넓은 바다에서 반짝이는 진주 같은 영롱한 시간들이었다.
 
중국 산시성(陝西省) 딩벤현(定邊縣)으로 가는 길에 양떼가 길목을 가로막고 지나고 있다.(사진=장용)

이제 닝샤후이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도 지나고 산시성의 딩티엔에 들어왔다.

중국에 '산시성'으로 발음되는 성이 두 곳이 있다. '산시성(山西省)'은 동부에 있고 내가 지금 막 들어선 곳은 '산시성(陝西省)'이다.

이곳의 주도가 우리가 전통적인 실크로드의 출발지라고 부르는 '시안(西安)'이다.

시안은 중국 최초로 통일왕국을 이룩한 진나라뿐만이 아니라 13개 왕조를 거치는 1180여 년 동안 중국의 수도였다.

당나라 때 인구 100만을 자랑하던 시안은 세계 정치, 경제, 종교, 문화의 중심지였다. 중국에서 이슬람과 기독교가 가장 먼저 전파된 곳도 시안이다.

시안은 처음 내가 일정을 짤 때 가장 중요하고 꼭 지나갈 도시로 표기하였는데 이제 이 일에 간여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의 여정이 변경이 되어서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당나라 때 오래도록 평안하라는 뜻의 ‘장안(長安)’으로 불렸다가 수도를 비롯해 국가 정치, 경제, 문화, 중심이 동부 베이징으로 이동한 이후 서쪽이 편안하라는 의미에서 ‘시안’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중국 산시성(陝西省) 딩티엔에서 마카오 대학을 다니는 빙칭네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사진=장용)

산시성(陝西省)으로 들어오기 전 어제 닝샤후이자치구의 작은 마을에서 숙소를 정하고 짐을 푸르고 샤워까지 했는데 공안이 더 큰 도시로 가서 자라고 짐을 싸라고 한다.

중국에서 외국인들이 숙박할 수 있는 호텔은 제한적이다. 그런데 이 기준이 어디에 근거를 둔 건지 알 수가 없다.

별 세 개 이상의 호텔에서만 숙박이 가능하다는데 별 세 개라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기분 좋게 휴식을 취해야할 시간에 짐을 다시 꾸려 70km 이상 차로 달려 산시성 의 첫 도시 딩티엔으로 들어왔다.

저녁식사를 하러 호텔 옆 식당을 찾아갔는데 이 식당 딸 빙칭이 마카오에서 대학을 다니다 방학 때 집에 와서 부모님을 도와주고 있다.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피곤한 줄 모르고 이야기하다가 올라와 침대에 눕자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말이 통하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리기가 좋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미역국이 서비스로 나와서 좋았다.

말이 통해서 잠시 마음을 나누다가 정으로 미역국을 서비스라고 내미는 손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수도자들의 수행 중에 묵언수행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이렇게 홀로 떨어져 1년 가까이 있어보면 알게 된다.
 
중국 산시성(陝西省) 딩티엔에서 안비안으로 가는 길에는 수박 행상이 내미는 하미과 조각.(사진=장용)

딩티엔에서 안비안으로 향하는 길에는 하미과와 수박 행상들이 길거리에 늘어서 있었다.

그 중에 한 아주머니가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을 달려 올라가는 모습을 보더니 오라고 손짓을 한다.

손에는 잘 익은 하미과 한 조각이 들려있다. 그 과일을 내미는 아주머니의 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받아든 아이처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더니 아예 그 큰 과일 한 덩어리를 통째로 내놓는다.

나는 한 조각만 더 먹고 그 아름다운 손을 잡아 최고의 감사를 표했다.

기본적인 한자 실력으로도 어림짐작할 수 있는 간판들은 많다. 예를 들어 중심(中心)은 중요지역이나 센터라는 의미이다. 초시(超市)는 슈퍼마켓(Super Market), 컴퓨터는 전뇌(電腦)라고 한다.

지금 한국에서는 일상 대화에 영어를 무차별적으로 섞어 쓰는데 심히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심지어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이름마저도 영어식 이름 하나씩은 웬만한 사람들은 다 가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미국에 살면서 내 이름 석 자 지키고 사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명구’라는 발음이 어려우니 영어로 바꾸라는 것이었다.
 
산시성(陝西省) 딩벤현(定邊縣)서 Anbianzhen(安邊鎭)으로 가는 길에 운동하는 중국인.(사진=장용)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이름 석 자 받아 들면서 처음으로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북에서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가 온 가족의 축복 속에 장손으로 태어난 나의 이름을 '강명구(姜命求)', 건강하고 복되게 살기를 축원하면서 장고를 거듭하면서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세계화 시대에 살게 될 아이의 운명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이름을 지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외국 사람이 나를 부르는 것이 어려운 것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름은 곧 그 사람이다. 자신을 나타내고 소개하고 알리는데 필요한 수단이자 목적이다.

누구나 이름을 날리고 명예를 얻고자 열심히 살아간다. 그 이름이 기억하기도 좋고 자기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면 좋겠다.

사람이 살면서 어떤 이름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로부터 불리느냐는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름 이외에 호나 자를 쓰기도 했고 글을 쓰는 사람은 필명도 있고 연예인은 예명도 있다.

나는 미국에 살면서 굳이 한국 이름을 고집하고 살았는데 사실 불편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꼭 지키고 싶은 자존심과 정체성은 있었다.

그 이름으로 내가 살아온 시간들의 소중함이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산시성(陝西省) 딩벤현(定邊縣)서 Anbianzhen(安邊鎭)으로 가는 길에 아이 안은 아버지.(사진=장용)

김윤진, 그녀는 한국에서 영화 ‘쉬리’로 스타덤에 오르고 다시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드라마 ‘로스트’로 원드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녀는 뉴욕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에게 물었다. “연기자로 활동하려면 친근한 이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제니 킴’은 어때요?”

선생님은 정색을 하며 “연기나 잘 해! 그러면 사람들은 네가 아무리 어려운 이름을 가지고 있어도 발음 연습을 해서라도 네게 올 거야!”

그녀는 결코 부르기 쉽지 않은 ‘윤진김’으로 불리면서 아시아의 신비스러운 이미지까지 얹어져서 왕성하게 연기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찬호박의 성공과 세리박, 신수추, 현진류 등의 성공을 한국이름으로 들으면서 지켜봐 왔다.

발음이 약간 이상하지만 물건이 좋으니 ‘샘성’ 이라는 상표의 성공도 지켜보고 있다. 무엇보다 압권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었다.

기문반이 아니라 반기문이라고 정확하게 발음한다. 아무리 거만한 미국인도 재인문이라고 하지 않는다.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부른다.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그를 정은김이라 부르지 않는다.
 
산시성(陝西省) 딩벤현(定邊縣)서 Anbianzhen(安邊鎭)으로 가는 길가에 있는 흙벽돌 집.(사진=장용)

우리의 이름은 성이 앞에 가고 이름이 뒤에 붙어야 제대로이다. 성이 앞에 나오고 이름이 뒤에 따르는 것도 문화 정체성의 한 부분이다.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면 세계인들도 따라온다.

우리가 미치도록 아끼고 사랑했지만 사실 외국인들에게 내놓기는 맛으로나 냄새로 부끄러웠던 김치 맛을 이제는 세계인들도 알게 되었다.

우리말 노래가사를 흥얼거리는 사람들이 이제는 저렇게 많은데 이름 석 자 못 따라 부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한 최고의 배려는 나의 모습을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대로 내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내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고 그 분명한 정체성을 남들에게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을 때 민족을 넘어 인류 보편적인 시민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이 유라시아 평화시대의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외 기고는 본사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저작권자 © 아시아뉴스통신.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제보전화 : 1644-3331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의견쓰기

댓글 작성을 위해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 시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