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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114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홍근진기자 송고시간 2018-09-03 09:33

[기고]애당초 내 머릿속에는 2안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남북통일 기원 유라시아대륙 횡단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본지는 지난해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1년2개월 동안 16개국 1만6000km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고 중국과 북한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올 예정인 통일기원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씨의 기고문을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다.[편집자주]
 
당초 내 머릿속에는 평양을 거쳐 판문점을 통과 내려오는 것이었다. 빗 속을 달리는 필자.(사진=장용)

애당초 내 머릿속에는 제2안은 없었다. 오로지 하나, 그것은 북을 통과해서 신의주에서 시작해서 평양을 거쳐 판문점을 통과하여 남으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하여 이 고난의 여정을 시작했다. 이제 딱 1년이 되었다.

1년 동안 나는 1만 3000km를 달려서 이제 중국의 심장 베이징을 코앞에 두고 있다.

단지 남북의 막혀버린 체증을 뚫고자하는 열망으로 시시때때로 닥쳐오는 고난도 두 눈 부릅뜨고 맞서서 이겨냈다.

그런 내게 처음부터 제2안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 거침없는 발걸음은 이제 산시성(山西省)의 마지막 도시 광린에 도착하였다.

산시성과 허베이성(河北省)을 나누는 타이항(太行) 산맥을 넘어 이제 내일이면 베이징을 품은 허베이성에 진입하게 된다.

이제 가을의 문턱을 넘어서는 나의 마음은 지금 바람보다도 빨리 한반도의 평화의 봄을 향해 질주해간다.

나의 뜀박질은 호기심을 채우는 두레박이다. 새로운 길을 찾아다니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을 채운다.

무엇보다 축복은 달리면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 안으로 달려가는 내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중국 산시성(山西省) 숴저우시(朔州市)에 있는 소백촌(小泊村) 입구에 서 있는 상징물 모습.(사진=장용)

유라시아대륙을 달리면서도 내 모든 사고의 두레박은 내 안에 깊은 샘 속에 흐르는 그 신비한 생명수를 길어 올린다.

처음엔 건강을 위해서 달렸지만 이젠 삶에 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 몸과 마음의 근육을 만들려고 달리고, 자신감을 더 얻고, 지혜를 얻으려고 달린다.

매일매일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는 것은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아가겠다는 마음의 다짐이기도 하다.

아주 멀리 가고 싶은 욕망은 아마도 아주 어린 소년소녀시절부터의 모든 이의 막연한 꿈인지도 모르겠다.

아주 멀리가면 아직 만나지 못한 귀한 그리움을 만나리란 막연한 상상과, 아직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만나리란 기대.

그래서 1만 3천km를 달리면서 더 깊은 호수의 전설과, 더 오래된 숲속의 이야기와,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신비와 꿈자락처럼 펼쳐진 드넓은 초원과 더 푸른 하늘의 아름다움을 만나보았다.

그런들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내 아버지의 고향, 내 마음 속의 고향땅을 밟지 못한다면.

 
남북한의 평화를 염원하며 중국 산시성(山西省) 숴저우시(朔州市)를 달리고 있는 필자 모습.(사진=장용)

1년을 새벽 4시 면 일어나 준비하고 6시부터 달리기 시작하여 하루 42km를 꾸준히 달려왔다.

지난 9월 1일 네덜란드의 헤이그를 출발하여 낙엽이 뒹구는 독일의 시골길을 달려왔다.

눈 내리는 불가리아의 소피아를 가까스로 피해왔지만 터키와 그루지아의 코카서스 산악지역을 지날 때 손과 귀가 어는 듯한 추위도 이겨냈다.

투르크메니스탄과 중국의 신장위그르의 사막에 달릴 때 정수리에서 한여름의 이글거리는 태양에 넌더리를 치며 헤쳐 나왔다.

가슴 속에서 타오르는 횃불을 들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 흑해와 카스피 연안을 지나 사막과 사막으로 이어지는 중앙아시아를 다 지났다.

텐산 산맥을 넘어 신장위그루 지역의 중국공안의 장벽도 넘어서 된장냄새, 고추장냄새 푹푹 풍기는 나의 땀방울들을 유라시아를 가로지르고 쏟아냈다.

체증처럼 막혀있는 남과 북의 길을 뚫어보려 달려왔다.

그러니 처음부터 나의 길은 압록강을 건너는 길 이외에 우회하는 길이란 없었다.

 
중국 산시성(山西省) Dalinhexiang(大鑑河縣)에 있는 불궁사(佛宮寺) 석가탑(釋迦塔) 모습.(사진=강명구)

아버지는 평생 위장병을 달고 사셨다. 나도 위가 별로 안 좋은 편이었다. 그러던 것이 달리면서 위장도 튼튼해지고 오장육부가 다 튼튼해졌다.

체했을 때 아무리 좋은 약을 먹어도 듣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어머니는 어깨 쪽부터 손으로 쭉쭉 훑어서 마사지를 하며 손까지 피를 모은다.

그리고 실로 엄지손가락 피를 안통하게 해준 다음 바늘을 촛불에 달구어 소독을 한 다음 아랫부분을 감아 엄지손톱 모서리 끝부분을 바늘로 콕 따주셨다.

그러면 검은 피 한 방울이 솟구쳐 오르고 막혔던 울혈이 풀려 체증이 거짓말처럼 풀렸다.

어깨 쪽부터 손으로 쭉쭉 훑어서 마사지를 하며 손까지 피를 모은들 무슨 소용 있으랴?

엄지손가락을 바늘로 따서 막혔던 울혈을 풀어주지 않으면, 유라시아대륙을 힘들여 뛰어온들 무슨 소용 있으랴?

내가 압록강을 건너지 못한다면. 피 한 방울 뽑아냄으로서 막혔던 체증을 풀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간단하고 편리한 민간요법인가.

내 유라시아 달리기가 한반도의 73년 묵은 체증을 뚫어내는 민간요법이 될 수 있다면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어떤 명의도 치유하지 못한 한반도의 체증을 치료하는 화타가 되는 일인데 여기에 멈출 수가 없는 이유이다.

 
남북한 평화를 기원하며 중국 산시성(山西省) Shalingpucun(沙聆補村)을 지나고 있는 필자.(사진=장용)

화타는 주나라 때의 전설적인 의사 편작과 더불어 명의(名醫)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약물 처방뿐 아니라 외과 수술에도 정통한 그는 ‘최초의 외과의사’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마비산이라는 마취제를 만들어 사용했다고도 전해진다.

화타는 약과 침, 뜸 등에 모두 정통했고, 침과 약만으로 치료할 수 없을 경우에는 환자를 마취시키고 환부를 절개했다.

창자에 질병이 있는 경우에도 창자를 잘라 씻어내고 봉합해 고약을 붙이면 4〜5일 만에 고통이 없어지고, 한 달이면 완쾌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반도를 73년 동안 시름시름 않게 한 병은 다른 병도 아니고 체증이다.

돌팔이 축에도 못 끼는 내가 한반도의 끝부분에 피 한 방울 내고 울혈을 풀어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는데 내가 그 정도 결기도 없이 이 험한 길을 나섰을 리가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좋아지면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의 강이 흐르고 남과 북이 만나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며 그리워하면 그 사이에 평화의 물길이 트인다.

그 물길을 따라 온갖 생명이 자라고 번성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기필코 압록강을 넘어 평양을 거쳐 광화문으로 들어가는 일은 나쁜 피 한 방울 뽑아 우리나라의 울혈을 풀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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