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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117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홍근진기자 송고시간 2018-09-14 20:47

[기고]은숙이는 지금껏 나의 모든 그리움의 대명사이다
남북통일 기원 유라시아대륙 횡단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본지는 지난해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1년2개월 동안 16개국 1만6000km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고 중국과 북한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올 예정인 통일기원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씨의 기고문을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다.[편집자주]
 
유라시아 대륙을 달리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한 길이 아쉽기만 하다.(사진=장용)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여운은 절절하다.

유라시아대륙을 달리면서 더 곡선의 시간, 더 많은 공간,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모든 욕심을 다 채울 수가 없었다. 삶은 언제나 선택과 집중을 강요한다.

유라시아 대륙을 온전하게 나의 두 다리의 근육에 의존해서 완주하는 일에 더 집중하다 보니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한 길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베이징에서 오랜만에 휴식도 취하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가지고 친구도 만나 즐거운 시간도 보냈지만 베이징의 그 유명한 볼거리들을 보지 못했다.

지금 내게 구경하는 시간보다 더 절실한 것은 휴식의 시간이다. 또 하나의 가지 않은 길을 여운으로 남긴다.

작년 9월 1일 헤이그에서 출발할 때도 형성이와 은수가 부부동반으로 찾아와 자칫 초라하고 쓸쓸했을 발걸음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번에는 경환이까지 같이 와 먼 길 달려온 발걸음을 위로해주니 그 기쁨이 몇 곱절 크다.
 
어릴때 친구 형성이와 은수 그리고 경환이가 북경으로 찾아와 내 발걸음에 힘을 실어 줬다.(사진=장용)

많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달리지만 유라시아 대륙을 달리는 길에는 일찍이 공자가 설파한 군자(君子)된 자의 삼락(三樂)을 즐기는 시간이기도 하니 딱히 아쉬울 것도 없다.

어차피 인생은 매순간 선택과 집중을 강요당하니 말이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학이시습지불역열호, 學而時習之不亦說乎)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은가?(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인부지이불온불역군자호,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달리면서 나는 많은 공부를 했다. 이렇게 집중적으로 알차게 산 공부를 해본적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알차게 배운 것을 또 달리면서 익히는 시간까지 가지니 이 아니 기쁨이겠는가?

먼 곳에서 나를 찾아 응원해주러 사람들이 오고, 특히 어렸을 때 친구들이 찾아주니 또한 기쁘지 않은가?

그리고 어제 KBS 베이징 특파원과 이곳의 요녕신문, 서울신문 한겨레신문에 내 기사가 나갔어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아직 국내외 언론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성낼 일도 아니니 내가 과연 군자답지 아니한가?
 
어릴때 친구 형성이와 은수 그리고 경환이가 북경으로 찾아와 내 발걸음에 힘을 실어 줬다.(사진=장용)

같은 무렵 첫사랑에 가슴을 졸여했고, 그 무렵 술도 배우고 담배도 몰래 배웠다.

아마 그 무렵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먼 곳에서 아련히, 눈부시게 빛나는 무언가를 함께 바라봤다.

저 깊은 곳에서 일어나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리는 혼돈과 같은 방황을 함께 했었다.

촌스럽게 심장이 두근거려 누가 알아챌까 두려웠던 것들을 우리는 서로 알아채고 놀려먹기도 했었다.

두근거리던 시절 두근거리던 심장을 공유한 친구들이다. 그때 10년 후, 20년 후를 꿈꾸고 또 걱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났다.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면 속 깊은 곳에서 바람이 일어 옛일이 흔들리는 촛불 앞에 일기장처럼 아스라이 떠오른다.

그 시절 나는 찌질하고 약해서 내가 은숙이를 그렇게나 사무치게 좋아했던 것도 본인도 아닌 친구들에게 조차 얼마 전에야 고백할 수 있었다.

은숙이는 지금껏 나의 모든 그리움의 대명사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껏 한 번도 그 대명사를 밖으로 표현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유독 즐겨 사용하니 그 단어가 은숙이를 표현하는 대명사인 셈이었다.

세월이 가져다주는 기억의 카오스 속에서 그리움이 은숙이가 되었다가 은숙이가 그리움이 되는 혼란이 일어났다.
 
중국 북경 외곽을 달리며 지나치고 있는 젊은 여인과 삼륜 택시가 이국적인 모습을 보인다.(사진=장용)

그녀에게 나는 한 번도 내 마음을 전해본 적이 없었다. 첫 휴가를 나오자 제일 먼저 한일은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전화를 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1년 전 유라시아대륙에 거의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뛰어든 용기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었다.

그러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는 가뜩이나 여린 내 심장을 여지없이 꽁꽁 얼려버리고야 말았다.

더 긴 말은 오고가지 않았다. 약속 장소만 정해졌을 뿐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믿기지 않고 어처구니없는 좌절을 안겨준 그날 나는 내 친구와 함께 종로 2가의 음악다방으로 나갔다.

그녀는 미리 친구들과 나와서 앉아 있다가 내가 자리에 앉자 내게로 다가와 편지만 달랑 한 장 내밀고 사라졌다.

그날이 그녀가 내 인생의 무대에서 짧고 슬픈 단역배우의 역할을 마치고 영원히 퇴장해 버린 날이다.

나는 두려워서 그 편지를 열어보지 못했다. 정황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데 구차하게 편지를 읽어볼 필요는 없었다.

이럴 때 친구 앞에서라도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해 보였다. 성냥을 그어서 편지의 끝부분에 대었고 알 수 없는 언어는 태워졌다.
 
중국 북경 외곽 三河本區 행정구역 경계에 세워져 있는 건축물 아래 차량들이 달리고 있다.(사진=장용)

그 후 나는 오래도록 그 편지의 내용이 문득문득 궁금했다. 내가 태워버린 그 편지는 내 가슴에서 타지 않고 그리움으로 남아 내 기분에 따라 다른 내용으로 읽혀지곤 했다.

그 편지는 힘들고 고단할 때 용기를 주는 격려의 글이기도 했고, 때론 내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폭력이 되기도 했다.

친구들 사이에도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궁금한 것들이 있다.

그때는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었던 것들도 세월이 흐른 후에는 그런 부끄러운 것들과도 정답게 마주앉아 가슴을 데워주는 와인 한 잔 나누고 싶을 때가 있다.

나의 여린 심장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나에게 깊은 좌절을 안겨주었던 ‘은숙’이를 평생 호리병에 담아 내 마음속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가두어 두고 스스로도 옴짝달싹 못하면서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유라시아를 출발하기 전 우연한 기회에 용기를 내어 친구들에게 고백했었다.

세월이 내게 그런 용기를 가져다 주었나보다. 이제 유라시아를 거의 다 오면서 강인해진 내 심장은 이제 실명을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중국 북경 외곽 興林區에 있는 수상공원에 멋진 누각과 나무, 배와 다리가 그림같이 서있다.(사진=장용)

내가 쓴 소설의 주인공은 은영이였고, 또 다른 글에서는 그냥 그녀이었다. 이젠 오랜 세월이 흘렀고, 세월 속에 ‘은숙’이는 모든 그리움의 대명사가 되었다.

나의 젊은 날은 달빛에 물든 전설이 되었다. 추억은 책갈피 속에 끼워둔 은행잎처럼 세월을 덧입어 더 깊고 은은한 색이 되어간다.

베이징에서 사흘간의 꿈같은 휴가는 노영민 주중대사의 극진한 환대와 남북연락사무소가 설치되면 그곳을 통해 내 이야기를 북측에 전달하겠다는 언약.

베이징 한인회가 준비한 환영만찬과 그 다음날은 평통에서 주최한 환영만찬, KBS 촬영.

또 원불교 베이징 교당 법회참석 등 바쁜 가운데서도 마지막 날 친구들과 오붓하게 모여앉아 악동시절 즐거웠던 이야기 보따리를 베이징 가을 하늘에 풀어 날리는 시간이 단연 소중했다.

그때 또 은숙이 이야기가 화제의 천일야화처럼 이어졌다.
 
중국 북경에서 몇 일 쉬면서 원불교 교당을 찾아 법회에 참석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장용)

내 달리기는 그리움을 찾아 나선 맹구의 모험 같은 것이다. 젊은 시절 거의 모든 시간을 그녀를 그리워하면서도 어떻게 다가갈지 모르며 애만 태우고 좌절했었다.

그 그리움이 너무 간절하기에 이 길고 험한 여정에 나는 한 번도 지루해하거나, 두려움이나 불안에 떨지 않았다.

이젠 그 그리움이 은숙이였다가 조국의 자주 평화통일도 되고, 세계 평화이었다가, 다시 아버지와 화해의 시간이 되기도 하고, 할아버지 묘소 참배이기도 했다.

또, 한 번도 보지 못한 고종사촌을 만나고픈 여망이 되기도 했다. 그것은 때로 새로운 평화 세상을 여는 가슴 벅찬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 시절 그 큰 좌절은 이제 와서 내 유라시아횡단 마라톤을 지금껏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정신력의 근원이요, 내 글의 자양분이 되었다.

평화,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실행에 옮기는 영감이 되었고, 그것을 추진해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영혼이 허기질 대 언제라도 꺼내서 우려먹는 곰국 같은 존재가 되었다.

기필코 압록강을 건너 평양을 거쳐 판문점을 넘어 광화문에 도착하겠다는 나의 결기의 원천이 된 것이 재미있고 통쾌하다.

이제 나는 말도 못하고 속으로 애만 태우던 그때의 내가 아니다.

새로운 나의 은숙이를 위하여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운 유라시아가 키워낸 새로운 나이다.

은수야, 경환아, 형성아 먼 길 와서 얼굴 보여줘서 고맙다! 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사외 기고는 본사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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