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 24일 수요일
뉴스홈 칼럼(기고)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83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홍근진기자 송고시간 2018-05-10 08:41

[기고]비슈케크에서 휴대폰 케이스에 넣어준 독립자금
남북통일 기원 유라시아대륙 횡단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본지는 지난해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1년2개월 동안 16개국 1만6000km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고 중국과 북한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올 예정인 통일기원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씨의 기고문을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다.[편집자주]
 
키르키스스탄에서 카자흐스탄 국경을 넘을 무렵 동반 주행을 해준 허 블라디미르씨.(사진=김현숙)

초원의 야생화는 척박한 땅에서도 꽃을 피우고 진한 향기를 뿜는다.

말발굽 소발굽에 밟혀도 다시 일어나 자라 세대를 이어간다.

이곳 중앙아시아에 이주해온 고려인들은 초원의 야생화보다 더 강인하게 살아남아 한국인 특유의 향을 흩뿌린다.

길을 나서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서도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만남을 가졌다.

키르기스스탄에도 우리 과거와 현재의 역사가 있다.
 
키르기스스탄의 비슈케크 엘림게스트 이양종 사장님이 정성껏 해주신 맛있는 한국음식.(사진=김현숙)

이양종씨는 20년 전 몸이 안 좋아 공기 좋고 물 좋고 약초가 많은 이곳에 휴양하러 왔다가 정착해 살고 있다.

그는 한국관광객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하고 건축자재 사업도 하면서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는 나의 평화마라톤 소식을 듣고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주고 싶어 했다. 

자신의 엘림 게스트 하우스에 마음 편하게 있으라 해서 그곳을 거점 삼아 며칠 왔다 갔다 하며 달렸다.

덕분에 엘림에서 잠도 편히 자고 잘 차려주는 밥상으로 영양도 충분히 보충했다.

길 위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편한 잠자리와 맛있는 음식 주는 사람이 제일 사랑스럽더라!

저녁을 사준 평통위원인 정지성씨도 여기서 한식당과 여행사를 하면서 뿌리를 내렸다. 
 
키르기스스탄의 비슈케크 엘림게스트하우스에서 허 블라디슬라브, 강명구, 정지성 민주평화통일자문 키르기스스탄 지회장, 김현숙, 이양종 엘림 게스트하우스 사장.(사진=김현숙)

왕산 허위 장군 후손들도 이곳에 정착해 살고 있다.

경상도 구미가 본관인 그들은 거의 백 년 전 8000km를 흘러들어와 이곳에 살고 있고, 나는 서쪽 끝에서 8000km를 달려와 그들을 만났다.

허 블라디슬라브씨는 9형제 중 형님 한 분 누나 한 분만 살아있다.

그가 맏형님은 16세 때 우즈베키스탄에서 동사했다는 말을 할 때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한마디가 혹독한 삶을 다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나그네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아침에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가는 길에 허 블라디슬라브씨와 그의 조카 허 블라디미르씨가 나와 배웅해주었다.

블라디미르씨는 다음 주에 이식쿨 호수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처음으로 풀코스 도전을 한다고 한다.

카자흐스탄 국경까지 15km를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렸다.
 
키르키스스탄 국경서 기념사진 찍는 김현숙, 허 블라디슬라브, 허 블라디미르, 강명구.(사진=김현숙)

독립군 손자와 증손자는 그들 할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조국 자주독립의 꿈을 나를 통해서라도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심정으로 나에게 극진했다.

그들은 헤어질 때 선물로 준 휴대폰 케이스에 200달러를 넣어주었다. 마치 독립자금이라도 받은 듯 결연함이 울컥 올라온다. 

나는 사실 늘 지나다니던 서울 동대문에서 청량리역에 이르는 왕산로가 왕산 허위선생을 기리는 길이라는 걸 알 지 못했다.

왕산 허위선생은 구미 태생 조선말 의병장이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 조직한 13도 의병 연합부대 총군사장으로 대대적인 항일운동을 펼쳐 왜적의 간담을 서늘케 한 인물이다.

안중근 의사는 후일 "우리 2천만 동포에게 허위 선생과 같은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용맹의 기상이 있었던들 오늘날 같은 국치의 굴욕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고 그를 흠모하였다.

왕산 허위 가문은 우당 이회영 가문, 안중근 가문, 석주 이상룡 가문과 함께 항일운동 최고 명문 가문 중 하나이다.

허위 가문은 충효를 중시하는 가풍 덕분에 그의 4형제와 그의 직계 후손들 그리고 이육사까지 독립운동에 뛰어들 수 있었다.

이육사 모친은 허위의 4촌 허길의 딸이다.
 
키르기스스탄 국경을 넘기 전 이별의 아쉬움에 포옹하는 허 블라디슬라브씨와 강명구.(사진=김현숙)

왕산 허위는 성균관 박사와 평리원 수반 판사를 지낸 문관이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경기도 포천 등지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일본군에게 타격을 입혔다.

그는 양주에서 서울탈환작전을 펼치며 일거에 동대문 밖까지 밀고 들어왔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는 잡혀 서대문 형무소 1호 사형수가 된다. 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남긴 유언이 또 나를 찡하게 만든다.

"아버지 장사도 아직 지내지 못했고 국권을 회복하지도 못한 불충과 불효를 지었으니 죽은들 어찌 눈을 감으리오!"
 
키르키스스탄과 카자흐스탄 국경지대에 펼쳐진 장관. 젊은이들이여 닭장 속을 나와라!(사진=김현숙)

이제 우리는 전쟁을 통해서 우리 영토를 넓힐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삶의 전 영역을 넓히고 활동 반경을 확장할 수는 있다.

그러니 젊은이들이여, 닭장 안에서 모이가 없다고 한숨짓지 말지어다.

유라시아 한복판에 뛰어들어 바라보니 초원의 풀처럼 기회는 널렸다.

혹여 닭장 속이 답답하면 배낭을 메고 닭장 속을 뛰쳐나오라!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을 주유하라!

그러면 답을 얻으리라. 우리의 영역은 한없이 확장되리라!
 
※사외 기고는 본사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저작권자 © 아시아뉴스통신.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제보전화 : 1644-3331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의견쓰기

댓글 작성을 위해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 시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