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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124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홍근진기자 송고시간 2018-10-17 08:40

[기고]압록강이라는 절벽 앞에 서서 새 희망을 바라보다
남북통일 기원 유라시아대륙 횡단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본지는 지난해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1년2개월 동안 16개국 1만6000km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고 중국과 북한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올 예정인 통일기원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씨의 기고문을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다.[편집자주]
 
중국 옌벤자치구 장백현에서 북한 혜산시를 바라보며 카메라에 담고 있는 필자의 모습.(사진=송인엽)

나의 달리기가 기대한 것이 나비효과이다. 그러나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한 것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이 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나의 가녀린 날갯짓에 수많은 가녀린 나비들이 동조하여 태풍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가 평화의 나무를 한그루 심고,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심으면 숲을 이룰 터이고 통일은 그 숲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가녀린 날갯짓 한번하고, 나무 한그루 심는 것은 사소한 일이다. 사소한 일을 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이루어내는 큰 꿈을 꾸는 것이다.

나는 이곳 단둥에서 멈추고 고국으로 돌아갔다가 입북허가가 나오면 돌아와 다시 뛰는 것은 생각조차하지 않는다.

발걸음을 멈추는 순간 나의 달리기는 과거형이 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금방 잊어지고 말 것이다. 이제 막 힘을 받던 나비들의 날갯짓도 동력을 잃을 것이다.

나의 달리기는 끝날 때까지 현재진행형이 되어야 한다. 내가 이곳에 머물러 있는 자체가 남북당국에 압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혜산시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접해 있는 옌벤 조선족자치현으로 들어가는 입구.(사진=강명구)

나는 북한을 통과하지 않고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다음 주까지 방북허가가 나오지 않으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것도 각오하고 있다. 그 여정이 지금까지 달려온 여정보다 더 멀고 험할지라도! 북한 국경에서 떠돌이가 되어 떠돌아다닐 것이다.

‘통일 떠돌이’가 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한반도가 자주적으로 평화통일이 되기 전까지 우리 모두는 떠돌이 신세인지도 모른다. 슬프게도 우리는 너무도 오래 떠돌이 신세였다.

우리가 있어야할 제자리를 찾아나서는 머나먼 순례길이 바로 평화의 길이고 통일의 길이다.

떠돌이 중의 대표 떠돌이로 만주벌판과 연해주를 잇는 항일운동 유적지를 탐방하면서 옛 선지자들의 얼을 되살리는 것도 축복의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중국 옌벤 조선족자치현에서 바라본 북한 혜산시 압록강변에 빨래하는 여인들의 모습.(사진=강명구)

우리는 백두산을 가기 위하여 고속열차를 타고 1시간 반 걸리는 심양까지 가고 거기서 다시 12시간 달리는 일반열차의 침대칸에 몸을 싣고 백하로 갔다. 일기가 안 좋아 옌벤자치구 장백현으로 갔다.

압록강 양안에는 장백-혜산, 림강-중강, 집안-만포, 관전-초산, 단동-신의주를 통하는 5개소의 중국과 북한의 국경세관이 있다. 장백에서 바로 눈앞에 북녘의 혜산시가 바라다 보인다.

이곳에서 압록강은 그리 장엄하지도 위협적이지도 않았다. 10월 중순이지만 이곳의 날씨는 손이 시릴 정도로 쌀쌀하다.

중국 쪽 사람들은 이 물에 빨래를 하는 사람은 보이질 않지만 건너편에는 여인들이 삼삼오오 고무장갑을 끼고 빨래하는 모습이 보인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남쪽에서는 모습을 볼 수 없는 빨래방망이로 빨래를 두드리는 모습이 정겨우면서도 안쓰러워 보인다.

나는 “안녕하세요!”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니 저쪽에서 빨래하던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방망이질을 계속한다.

나는 재차 “안녕하세요!”하고 소리 지르니 다른 여인이 수줍은 듯 살짝 손을 흔든다.

이 곳은 맘만 먹으면 넘나들 수 있을 정도로 북과 가깝다. 얼음이 꽁꽁 어는 겨울에는 더욱 그럴 것 같다.
 
중국 옌벤 조선족자치현 해발 869m 산에 발해시대에 벽돌로 쌓은 5층 '령광탑' 모습.(사진=강명구)

바로 뒷산에는 발해 때 지어진 5층 전탑이 있었다. 이곳에서 발해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발해는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세운 나라이다. 중국의 기록에도 대조영은 ‘고구려의 별종’으로 묘사되어 있다.

지배층은 대씨와 고씨가 주류를 이루는 고구려인이며 피지배층은 말갈족이다.

말갈족이야말로 우리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조연이며 금나라 때는 여진족, 청나라 때는 만주족으로 불리다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민족이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또 천지에 오르는 일은 불가능 해졌다. 이 비는 천지에서는 눈으로 내릴 것이다.

우리는 방향을 룽징(용정)으로 돌렸다. 룽징 가는 고갯길에 폭설이 내려 가다가 몇 번을 차에서 내려 차를 밀어야했다.

3.1 만세운동의 파장은 중국의 상해를 거쳐 간도지방과 연해주, 미주 등 한민족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이어졌다.

만주의 북간도 지역은 해외에서 가장 치열한 독립운동이 펼쳐진 곳이다.
 
중국 용정 명동촌에 있는 '서시'의 작가 윤동주 생가 앞에 서있는 필자와 송인엽 교수,(사진=이성림)

3월 13일, 3.1운동의 발생 2주 뒤 용정에서 3.13 만세시위에는 2만여 명이 참가하여 13명이 죽는다.

이 시위는 우리 민족뿐 아니라 중국인들에게도 항일정신을 북돋아주는 계기가 된다. 이곳은 윤동주, 문익환, 나철 등의 혼이 서린 땅이다.

이진숙 교수의 소개로 이곳의 3.13 기념사업회 회장이자 전임 용정 문화원 원장이기도 한 이광평 원장을 만나 그의 안내로 명동촌의 윤동주 생가를 방문하였다.

그는 잔잔하고 슬프면서 강건하며 부드러운 순백의 영혼으로 우리 민족의 감성을 자극하며 가장 사랑 받는 시인이 되었다.

그의 시를 마주한 이 땅의 모든 소년과 소녀들은 시인이 되고자 한번쯤은 꿈꾸었다.

그 시절 누구나 한번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성찰하지 않은 이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내 유라시아 마라톤의 원류도 무의식 중에 잠재해 있는 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성찰하는 인간애, 민족애가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중국 용정 명동학교에서 길림성 CCTV 촬영 팀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는 강명구씨.(사진=송인엽)

부끄러움으로 나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게 했던 시인이 다니던 명동학교에 들어서다 중국 길림성 CCTV 촬영 팀을 만나 나의 유라시아 평화마라톤을 소개할 시간도 얻었다.

중국 정부에서도 이곳을 유적지로 정성스레 관리하는 모습이다.

인터뷰는 생각보다 길어졌고 그들은 다시 윤동주 생가에 가서 촬영을 더하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일송정까지 같이 가서 촬영을 더 하자고 했는데 이미 날이 어둑어둑해져서 서둘러 우리 일행은 발길을 돌려 비암산 일송정으로 갔다.

늙어 늙어가던 푸른 솔은 이곳에서 독립 운동가들이 모여 항일의지를 불태웠다 하여 일본군이 소나무를 향해 사격연습을 하여 말려 죽였다고 한다.

휘휘 늘어진 소나무가 마치 정자와 같다고 하여 일송정이라고 불리던 소나무는 간데없고 후세에 심은 젊은 소나무가 그곳을 찾는 이들을 어설프게 맞는다.

드넓은 만주벌판을 굽이굽이 흐르는 해란강 너머에 동모산이 보인다. 그곳이 발해의 중심지라고 이광평 원장은 설명한다.

일송정 정자에 서서 나와 송인엽 교수, 이광평 원장, 이성림씨가 ‘선구자’와 김광석의 ‘광야에서’를 만주 벌판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힘차게 불렀다.
 
중국 길림성 장백현에 속해 있는 북쪽 루트를 타고 오른 백두산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사진=송인엽)

다음날은 날씨가 쾌청하여 백두산으로 향했지만 장백폭포를 보고 그곳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온천물이 흐르는 것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직 눈이 덜 치워졌다는 것이다. 지금은 활동을 안 하는 휴화산이지만 여전히 땅 속에 용암이 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다.

천지로 올라가는 길은 아직 쌓인 눈을 치우지 못하였다고 한다. 사흘째 백두산은 우리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백번을 올라야 두 번 정상을 볼까 말까라고 해서 백두산이라고 이름 지어졌다는 농담도 있다.

이제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이번 일정 중에 과연 천지에 오를 수 있을까?

나흘째 되던 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개고 날씨는 온화하였다.

백두산은 북한의 양강도, 함경북도와 중국 동북지방의 길림성이 접하는 국경에 걸쳐 있는 산이다.

중국 측으로 걸쳐 있는 백두산 지역은 길림성 장백(長白)현에 속해 있다.

중국은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부른다. 백두산은 한반도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장군봉이 2750m이다.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은 한국의 척추와 같은 골격으로 우리 땅의 모든 산들은 여기서 뻗어 내렸다하여 흔히 '민족의 영산'으로 표현된다.

천지는 전 세계 화산호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이다.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장엄한 봉우리들의 수려한 자태도 일품이다.
 
백두산에서 눈 위에 ‘평화통일’이라 쓰고 소주와 사과를 놓고 천지신령께 제를 올렸다.(사진=강명구)

백두산 천지로 오르는 길은 동, 서, 남, 북으로 총 4개가 있다. 그중 3개(서파, 남파, 북파)가 중국 지역에 속해 있다. 그 중 우리는 북파로 올랐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북측 지역에 속한 동파로 천지 인근의 장군봉까지 올랐었다.

천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찢어져 살아온 73년이 비쳐져오는 슬픔이 복받쳐온다. 이제 슬픔은 다 쏟아버리고 새로운 희망을 채워야할 때이다.

우리는 작대기로 눈 위에 ‘평화통일’이라 쓰고 그 앞에 소주병과 사과를 놓고 4배를 올리며 천지신령에게 제를 올렸다.

주머니에서 카톡에서 신호음이 울려 꺼내보니 카톡이 이곳에서도 터진다.

바로 셀카로 눈 덮인 천지의 장엄한 모습을 찍어 전송하니 사진으로 보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흥분한 것같이 좋아한다.

백두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만주 벌판이 우리를 감격에 넘치게 한다. 그 감격이 노래가 되어 나온다.

우리가 ‘You raise me up’과 ‘선구자’, ‘광야에서’를 연속으로 함께 부르니 주위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비디오 촬영도 하고 박수도 쳐준다.

그중에 한국 분들은 함께 따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천지에서 감동의 작은 열린음악회가 열렸다.
 
중국 단둥에서 새벽 운동을 하며 바라본 압록강 모습. 마치 수천길 절벽으로 느껴진다.(사진=강명구)

다시 단둥으로 내려와 아침운동을 하면서 압록강 앞에 섰다.

며칠 여유롭게 백두산 천지와 윤동주 생가 등 항일유적지를 돌아보았지만 입북허가가 아직 깜깜하다.

압록강이 내 앞에 수천 길 절벽처럼 막아서고 있다. 맥이 빠지니 동공이 풀리고 풀린 동공으로 저 멀리 바라보니 절벽의 이중성이 보인다.

절벽에서는 바로 눈 아래를 바라보면 현기증이 나도록 아찔하지만 시선을 멀리 던지면 시야가 확 트이는 것이 가슴마저 시원하다.

시선을 멀리 던지니 가슴벅차 오르도록 시원한 미래가 펼쳐져 보이는 듯하다.

절벽이란 어떤 이에게는 세상의 끝이지만 독수리 같이 결연한 이에게는 세상의 시작이 된다.

새끼 독수리는 어미에 의해서 절벽에서 던져진다. 떨어지면서 살기위해서 버둥거리다보면 어느덧 날개에 힘이 들어간다.

비로소 아기 독수리는 바람을 타고 기류를 자유자재로 타며 새 세상을 훨훨 날아다닌다. 그 순간 아기 독수리에게 절벽은 세상 끝이 아니라 세상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압록강이라는 절벽이 내게 새 세상의 시작이 될 것 같은 멋진 예감이 든다. 나는 많은 시민들이 내 등을 떠미는 것을 느낀다.

벼랑에서 뛰어내리면 독수리 등에 올라탈지 아니면 내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아날지 모르는 일 아닌가?
 
※사외 기고는 본사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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