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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126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홍근진기자 송고시간 2018-10-30 17:58

[기고]단둥에서 만난 잊혀진 독립선언 '무오 독립선언'
남북통일 기원 유라시아대륙 횡단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본지는 지난해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1년2개월 동안 16개국 1만6000km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고 중국과 북한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올 예정인 통일기원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씨의 기고문을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다.[편집자주]
 
입북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매일 아침 압록강변을 달리면서 강건너 떠오르는 해를 본다.(사진=강명구)

내가 1년여 전 네덜란드의 헤이그를 출발할 때 나는 내가 과연 내가 단둥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내 자신도 확신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단둥에 무사히 도착한다면 난 분명히 신의주를 통과하여 평양에서 멋진 밤을 며칠 보내고 판문점을 통해서 마치 내가 큰일을 한 사람인양 의기양양하게 광화문으로 들어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기 다 쏟아 부어 천신만고 끝에 여기까지 오는 것은 성공했는데 오히려 자신했던 북 통과가 압록강가의 안개 속처럼 한치 앞도 내다볼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압록강 압에서 울보가 되었다. 저 너머를 바라보면 동공에 힘이 빠지고 눈물이 자꾸 난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남아있는데 끝없이 달릴 것 같은 내 발걸음이 여기서 잦아드는 게 안타깝다.
 
입북을 기다리는 동안 단동 압록강변에서 아침 운동 하다가 만난 낚시하는 중국 사람들.(사진=강명구)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저 강 너머 안개 속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저 강 너머로부터 세계사적인 대전환기의 기운이 솟아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용의 입에 물린 여의주 같은 붉은 해가 매일 아침 한반도에서 넘어온다.

저 상서로운 기운은 극과 극의 모순을 극복하고 모든 이질적인 것들을 아무르는 상생과 화합, 공존과 번영의 새아침을 열 것이다. 희망의 빛이 한반도로부터 솟아오르고 있다.

내가 유라시아를 달려서 횡단한 것은 무한 속도 경쟁을 벌이는 현대문명에 반기를 든 것이다.

나는 유럽이 시작한 비정한 현대문명에 맞서서 유럽의 끝에서부터 한발자국씩 뚜벅이로 달려왔다.

차갑고 냉정한 세상을 달리면서 따뜻한 미래를 꿈꾸며 설계하였다. 압록강 앞에 서서 이제 아시아의 시대가 천천히 그러나 확연하게 다가오는 것을 가슴으로 느낀다.

그 시대는 한국의 통일에서 출발하는 멋진 마라톤 대회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입북을 기다리는 동안 단동 압록강변에서 아침 운동을 하다가 갓 잡은 물고기들을 봤다.(사진=강명구)

무한 속도 경쟁을 벌이는 현대문명에 반기를 들고 유라시아대륙을 오롯이 달려서 왔다.

대량생산, 중앙집권, 속도 경쟁 등 개인의 개성과 삶은 안중에도 없었던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종을 치기위해 달려왔다.

거대한 제국의 종말은 한반도의 평화를 막지 못하는 지점에서 시작되고, 세계의 평화는 한반도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아시아의 시대는 아직도 서슬이 시퍼런 서구 제국주의의 시대를 떠나보내고 함께 나누는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일 것이다.

이곳 만주 땅은 우리의 저항 정신이 곳곳에 깃든 땅이다. 이곳에 20여 일 머물면서 나는 그 옛날 거의 독립군을 챙겨주 듯한 교민들의 대접을 받았다.

압록강 신교가 내려다보이는 이성림씨 집에서 머물 때는 이웃에 살고 계시는 이진숙 교수님이 불고기 등 때때로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다 주셨다.

단둥 철교 근처의 민박집으로 옮기고서는 이곳 20여 년 전 단둥으로 와서 식당을 9개나 경영하는 성공을 이룬 백종범 사장의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좋은 사람들도 소개시켜주어 만나기도 했다.
 
입북을 기다리는 동안 단동 압록강변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만난 체조하는 중국 사람들.(사진=강명구)

나는 매일 아침 압록강변을 달리면서 동방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만난다. 이곳 단둥에는 수많은 조선족과 2만여 명에 달하는 북한 사람들을 만난다.

대부분 그들은 북과의 교역을 통해서 생업을 이어가는데 경제제재로 힘들어한다.

며칠 전 점심식사를 같이한 조선족 여자 분은 신의주에 전자제품 공장을 하는데 요즘 물건 반입이 잘 안 돼 죽을 지경이라고 한다.

그러나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압록강 철교는 요즘 다시 조금씩 부산해지고 있다고 한다.

아침 10시 즘이 제일 분주하다는데 이 때 나가보면 북으로 들어가는 화물차가 줄지어 있다.

여기서 옌벤 대학에 근무하는 노귀남 교수를 만나고 백두산 볕 좋은 자리를 잡아 13년 전 집을 짓고 단군할아버지를 모신다는 분을 만났다.

나는 그들을 통해 잊혀진 독립선언 ‘무오독립선언’을 만났다. ‘무오독립선언’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도 그전에 무오독립선언을 만나지 못했다. 만났다고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명동거리에서 스쳐지나가듯 만나서 잘 알지 못한다.
 
입북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매일 아침 압록강변을 달리면서 강건너 떠오르는 해를 본다.(사진=강명구)

내가 잘 알지 못하듯 학자들도 잘 알지 못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대부분 1919년 2월 1일 발표됐다고 나온다.

1919년은 기미년이다. 노귀남 교수에 의하면 1918년이 맞고 당시 해외에 뿔뿔이 흩어져있던 39명의 서명인들과 당시의 통신이나 교통 사정상 어느 한자리에 모이거나 연락할 수가 없어서 날짜가 정확하게 서명되지 않았다고 한다.

1918년 무오년에 이 독립선언서가 발표되었다면 올해가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1918년 11월로 추정되는 어느 날 만주 길림성에서는 무오독립선언이 발표되자 만주독립운동가와 암암리에 연락을 하던 유학생들이 영향을 받아서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2.8 독립선언이 발표된다. 독립운동가 39인이 서명한 대한독립선언서이다.

1910년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점령하면서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은 해외로 나가 독립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문장가로 이름 높던 조소앙 선생이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소앙은 1917년에도 독립운동 진영의 단결을 호소하는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 무오독립선언은 조소앙, 박은식, 신채호, 김규식,박용만, 박은식, 김좌진, 김교헌, 김규식, 이상용, 여준, 이동녕, 김동상, 류동열, 이승만, 이시영, 신채호, 안창호, 허혁 등 39명의 이름만 대면 알만한 쟁쟁한 인물들이 조국의 광복과 독립을 최초로 선언을 한 것이다. 
 
자신했던 북한 통과가 압록강가의 안개 속처럼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사진=강명구)

독립운동사 연구자들이 특히 높이 사는 건 선언서의 내용이다.

3.1 독립선언이나 2.8 독립선언에 비해 민족의 ‘대동단결’을 주장하고, 훨씬 신랄하게 일제의 침략을 비판하고 더 선명하게 독립의지를 표출했다.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방안으로 무장투쟁 노선을 명확하게 제시했기 때문이다. 내용의 일부는 이렇게 적혀있다.

“궐기하라 독립군! 한번 죽음은 사람의 면할 수 없는 바인즉, 개, 돼지와도 같은 일생을 누가 원하는 바이리오, 살신성인하면 2000만 동포와 동체로 부활할 것이니 일신을 어찌 아낄 것이며 집안이 기울어도 나라를 회복하면 삼천리 옥토가 자기의 소유이니 일가를 희생하라.”

이 투쟁정신이 훗날 청산리 전쟁이나 봉오동 전투 등 동북지역 무장독립투쟁의 빛나는 성과로 이어지는 그 출발점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이곳에서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 좋은 만남은 언제가 좋은 영향을 가져다준다.

단둥에서 만난 ‘무오독립선언’은 첫눈에 눈을 번쩍 뜨게 하는 매력을 가졌다.

‘무오독립선언서’는 우리 민족이 우리나라를 되찾으려면 민족이 대동단결해야 함을 강조하고 문장은 단호하다.

맨몸을 던져서라도 독립을 되찾자고 한다. 세계사적인 대 전환기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순국선열들의 얼을 되살리는 일부터이다.
 
※사외 기고는 본사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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